운명의 짝을 알려준다… 기발한 상상력 ‘타이머’

입력 2011-02-25 18:32


멀지 않은 미래, 자유연애 시대의 사랑 탐구마저 귀찮아진 인류는 ‘타이머’라 이름 지은 기계를 발명한다. 타이머의 기능은 자신이 ‘운명의 상대’를 만날 날이 며칠 남았는가를 알려 주는 것. D데이에 천생연분을 만나면 타이머는 현란하게 반짝이며 알람을 울린다. 기계의 성능엔 오차가 없다. 기발하게까지 느껴지는 할리우드 영화 ‘타이머’의 설정이다.

유쾌한 코미디로 무장한 초반부, 영화는 ‘과연 운명의 상대는 존재하는가’를 묻는 것처럼 보인다. 노처녀 의붓자매 우나(엠마 콜필드)와 스테프(미셸 보스)에게 타이머는 없느니만 못한 기계다. 우나의 타이머는 공백 상태. 그녀의 소울메이트가 아직 타이머를 착용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스테프의 타이머는 인연을 만나기까지 5000여일이 남았다. 우나는 타이머가 없는 남자만을 골라가며 사귄 후 타이머를 착용해보도록 하지만, 그때마다 남자친구들의 기계는 우나가 그의 짝이 아니라고 할 뿐이다.

기계의 지시에 따라 무감각하게 이별을 되풀이하는 우나. 잭 쉐퍼 감독은 정해진 운명만을 기다리며 주위의 인연을 헛되이 날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삶에 대해 능동적인 태도를 가지라고 훈계하는 걸까?

가벼운 유머로 일관한 로맨틱코미디인 것 치고, 영화의 메시지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비할 바 없는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타이머를 구입하지 않은 사람들의 용감한 선택이 드러나고 손쉬운 결말이 예상될 때쯤, 이야기는 의외의 방향으로 흐른다. 기계의 효력은 너무나 강력해서 결혼한 부부마저도 이혼하게 하고 사랑을 시작하던 연인들도 갈라서게 한다. 인간들은 눈으로 보이는 확신 없이 모험에 뛰어들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운명’대로 결론난다.

그러니 영화가 비웃는 건 운명을 맹신하는 미래의 구시대적 인간상이 아니라, 이성으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현대의 자유의지 그 자체다. 책임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이 손쉽게 택하는 건 짧고 소모적인 일회성 만남이다. 사랑은 모든 장애를 극복할 만큼 강하지 않고 의지는 생각보다 쉽게 변한다. 어떤 일에서든 자기의 것을 스스로 찾아나서야 하는 현대인들의 불안함마저 스크린은 고스란히 담아냈다. 발랄한 로맨스와 예측 가능한 해피엔딩을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은 허탈함에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15세가. 다음달 10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