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미래가 조작됐다… 맷 데이먼·에밀리 블런트 주연 ‘컨트롤러’
입력 2011-02-25 18:33
인간의 운명이 인간의 의지대로 흐르는가에 대한 ‘컨트롤러’(원제:The Adjustment Bureau)의 문제의식이 그다지 새로운 건 아니다. 그러나 한 편의 상업영화가 갖춰야 할 덕목에 새로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세련됨, 매력적인 배우, 눈을 뗄 수 없는 속도감, 진기한 볼거리 정도만 효과적으로 어우러져도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평가할 것이다. ‘컨트롤러’는 그 정도의 기대치는 충족하는 영화다.
이야기는 젊고 유망한 정치인 ‘데이빗 노리스’가 선거에 낙선한 직후 우연히 아름다운 여인 엘리스와 조우하며 시작된다. 데이빗은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지만 자신을 엘리스에게서 지속적으로 떼어놓는 거대한 집단적 존재의 힘을 알게 된다. 그 집단, ‘조정팀’은 범접할 수 없는 조직력과 초능력을 갖고 있다. 이유 없이 사랑을 가로막는 그들에게 왜냐고 물어보아도, 단지 ‘계획’이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
그 집단의 수장은 ‘회장’이라고 불리며 인류의 대소사를 통제한다. 그들이 한 개인에 불과한 데이빗의 연애사에 간섭하는 이유는 그가 장차 미국 대통령이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엘리스와 데이빗의 사랑이 너무도 강해 서로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도 말한다. 떨어져있으면 각각 세계 최고의 권력과 세계 최고의 명성을 누릴 수 있다는 예언을 무시하고, 둘은 끝까지 인연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인류의 모든 일에 관여하는 저 조직의 정체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정팀’은 신인가, 운명인가, 아니면 이성인가. 영화는 마지막까지 ‘회장’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조직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한 성찰을 관객들에게 맡긴다.
조정팀의 권능을 끝내 해치지 않으면서 해피엔딩까지 안겨주려다 보니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객석에서 간간이 터지는 웃음도 영화가 의도한 유머 때문이라기보다는 어설픈 작위로 인한 것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치밀한 ‘미래 설계도’ 하에 모두가 예정된 삶을 살고 있다는 설정은 ‘비밀의 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영화적 설정과 어우러져 볼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자유의 여신상 앞에 선 엘리스가 안정된 과거 대신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하는 장면에선 ‘트루먼쇼’나 ‘매트릭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인간과 사회의 존재에 대해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 ‘매트릭스’류의 작품인 것은 아니다. 세계의 이면을 장악하고 인간의 생을 통제하는 세력은 야망 대신 사랑을 쟁취하는 두 남녀의 로맨스를 위해서만 작동할 뿐이다. 데이빗과 엘리스의 자유의지가 강조되면서도 조정팀의 전지적 권능이 해체되거나 약화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관객들이 버거워하지 않을 만큼의 메시지와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오락성이 달게 어우러진 SF다.
‘본’ 시리즈의 히어로 맷 데이먼이 명예와 권력보다 사랑을 택하는 정치가로 분해 연기했는데,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품새가 의외로 썩 어울린다. 아름다운 무용수 역의 여주인공은 ‘걸리버 여행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에 출연했던 에밀리 블런트가 맡았다. ‘본 얼티메이텀’의 시나리오 작업을 한 바 있는 조지 놀피 감독의 작품으로 12세가. 다음달 3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