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강렬] 하루 옥수수 한 공기

입력 2011-02-24 19:20

지난 1997년에 처음 북한에 들어간 이후 몇 차례 내륙 깊숙이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300여만 명이 굶어죽었다는 ‘고난의 행군’이 끝나갈 무렵에 민간 식량 모니터링 일원으로 첫 번째 북한을 방문했을 때다. 평양에서 원산으로 가는 길에 터널공사를 하는 한 무리 인민군들을 만났다. 남한 청년들의 평균 신장 174㎝에 훨씬 못 미치는 160㎝ 키에 영양상태는 매우 부실해 보였지만 활달했다. 좁은 터널을 교행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북한 안내원은 우리 일행에게 “보시라요. 북조선 인민군들은 건설·로농 일꾼들입네다. 그들이 먹는 것을 갖고 자꾸 뭐라고 하지 마시라요”라고 목청을 높였다.

북한에 들어가기 전 1주일 동안 중국 단둥지역에 머물며 북한 전역을 대상으로 보따리 장사를 하는 조선족들에게 북한 식량사정을 청취했다. 그들은 굶어죽은 시체들을 황해도 해주 등 도시 뒷골목에서 보았다며 그러나 군인들은 비교적 잘 먹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 뒤에도 북한에 들어갈 때마다 남측이 보내는 식량 가운데 상당량이 북한군 식량으로 전용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그러던 북한이 최근 군인들에게도 제대로 식량 배급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뉴스가 북한 소식통들을 통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심지어 평양 방어임무를 맡은 3군단 예하 병사들에게 하루에 옥수수 300g을 못 줄 때가 있다고 대북 인권단체인 ‘좋은 벗들’이 전하고 있다. 강원도 1군단 산하 사단에서는 150g 미만의 옥수수를 배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150g이면 작은 공기 한 그릇이다. 왕성한 체력의 젊은이가 하루에 옥수수 작은 공기 한 그릇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배가 고파서 귀순한 북한 제대병의 체격은 21세에 키 154㎝, 몸무게 47㎏이었다고 한다.

다수 북한 군인들이 배고파 무기를 들고 탈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북한 체제 근간인 군대의 식량사정이 이 정도라면 인민들이 겪는 식량난은 불문가지다. 1990년대 북한 공동묘지를 지나다 보면 봉분 흙이 아직 마르지 않은 새 묘들이 수두룩했다. 굶어죽어 묻은 지 얼마 안 된 묘였다. 지금 상황은 ‘고난의 행군’ 시절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 같다.

아프리카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가 무너지고 있다. 북한에서도 인민의 고혈 위에 3대 세습 독재를 이어가는 김정일 정권의 붕괴 소리가 들리고 있다. 이제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강렬 논설위원 ry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