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대여업자 “받은 뇌물 토해내라” 초중고에 요구 파문
입력 2011-02-24 22:02
정수기 대여업자가 학교 관계자 10여명에게 ‘금품을 돌려 달라’는 내용증명서를 보낸 사실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뇌물수수 의혹을 받은 교육청 간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4일 광주시교육청과 경찰 등에 따르면 광주 문흥동 모 아파트 화단에서 이 아파트 16층에 사는 서부교육지원청 김모(57) 사무관이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억울하다. 연루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광주 A고등학교에서 행정실장으로 근무했으며, 이날 오전 정수기 대여업자 이모(68)씨로부터 수백만원을 받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이씨는 일선 학교 10여곳에 정수기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전달한 금품을 돌려 달라는 내용증명서를 발송했다. 문제의 내용증명서에는 이씨가 10년 넘게 정수기 업체를 하면서 각급 학교 교실과 복도 등에 정수기를 설치하는 조건으로 학교 관계자들에게 건넨 금품을 반환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 돈을 건넨 구체적 일시 및 장소와 함께 특정일까지 받은 금액을 반환해 달라는 이씨의 요구도 포함돼 있다.
이씨가 학교에 설치한 정수기는 수돗물을 정수해 마실 수 있는 것으로 대당 월 5만원 안팎의 임대료가 책정돼 있다. 경찰은 이씨의 납품 규모로 미뤄 일선 초·중·고교 행정실장 등에게 학교지원금 명목으로 전달된 현금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이씨가 광주 북구 고교 2곳과 서구 중학교 2곳에 모두 4000만원의 금품을 전달한 혐의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가 오랜 기간 수많은 학교와 거래한 것으로 미뤄 뇌물이 오간 사례도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 그동안 이씨가 거래한 학교 명단 등을 확보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은 특히 일부 학교 관계자들이 무통장 입금으로 돈을 돌려준 것으로 볼 때 이 같은 관행이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보고 모 교교 전 행정실장 김모(44)씨 등을 불러 금품수수 여부를 조사했다.
한편 이씨는 교육청의 식수 수질검사 과정에서 최근 위생 부적격 판정을 받아 자신이 납품한 정수기에 폐쇄 조치가 내려진 데 불만을 품고 이 같은 내용증명서를 발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장선욱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