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황사도 비켜간다는 강남 3구… 그들만의 100세 될 수도”
입력 2011-02-24 18:16
보건사회학자는 오래 살 방법을 연구하는 이들로 알았는데 “지금 오래 사는 것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계층과 지역에 따라 기대수명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데 ‘100세까지 사는 것에 대비한다’는 건 한가한 소리라는 말로 들렸다.
죽어야 할 사람 살리는 의료기술
서울이라는 좁은 지역에서도 동네별로 기대수명 격차가 크고, 또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으러 갔는데, 16일 연구실에서 만난 조영태(39)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100세론’ 비판부터 시작했다.
“지금 100세 노인들은 체질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인데, 앞으로 100세는 의료기술로 죽어야 할 사람을 살려내서 만드는 100세예요. 그럼 그 의료기술 혜택을 누가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오는데, 당연히 돈 많은 사람들이 수혜자일 테고, 그러면 건강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의 건강 격차를 묻는 자리에서 그가 ‘100세론’을 꺼내든 것은 ‘장수’보다 ‘격차’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제가 외국 학술지에 제출해서 현재 리뷰 중인 논문이 있어요. 교육 수준별 기대수명 차이를 보는 건데, 1995년, 2000년, 2005년 각각 교육수준별 기대수명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봤더니 한국은 진짜 차이가 많이 나요. 놀랄 정도예요.”
95년, 2000년, 2005년 모두 40세를 기준으로 대졸 이상은 기대여명이 38년이지만 초등학교 학력만 가진 사람은 28년으로 거의 10년이 차이난다, 40∼44세에 숨지는 사람의 비율도 초졸자가 대졸자보다 11∼13배 많았다, 그 차이가 더 확대되는 추세다…. 긴 설명 끝에 조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창 일하는 연령대인 40∼44세에 유독 격차가 커요. 저학력자의 근무환경이 더 열악해졌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조 교수는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런 경향은 더 가속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2010년 자료를 분석해보면 간격이 더 벌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작성한 ‘서울시 지역별 기대수명 불평등’ 논문은 지역별 건강 격차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니까 지역별 격차가 커 보이는 착시효과도 있죠. 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효과도 분명 있어요. ‘강남 3구’만 지닌 것, 예를 들면 구청이 제공하는 사회서비스, 도로가 얼마나 편안한가 등이 모두 건강에 영향을 끼치죠. 이런 것들의 격차 때문에 지역별 격차가 벌어져 가고 있어요.”
조 교수는 환경보건 전문가들 사이에 오가는 농담이라며 이야기를 하나 꺼냈다.
“황사도 강남은 비켜간다는 거예요. 황사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강남 사람들에겐 더 적다는 얘기입니다. 돈이 많으니까 황사경보 잘해준다는 거죠. 주민들 휴대전화로 경고 문자도 뿌려주고…. 또 강남 사람들은 그런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해요. 여름이면 미세먼지 농도 낮추려고 4차로 이상 도로에는 하루 두 번씩 물차가 돌아다니고요. 다른 지역은 구청 재정상 그렇게 못하겠죠. 개개인 잘 살아서 건강할 뿐만 아니라 문화적, 구조적인 효과가 있다는 거죠.”
100세론에 건강보험 무너질 수도
그는 ‘100세론’과 맞물려 있는 게 민영의료보험과 영리병원 도입론이라며 그 부작용을 우려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는 아주 훌륭합니다. 경제위기를 겪은 나라들은 대개 일시적으로 기대수명이 낮아져요. 러시아가 대표적이었죠. 자본주의로 전환한 직후 경제난을 겪으면서 기대수명 상승곡선이 확 꺾였습니다. 지난해 위기를 맞은 그리스와 스페인도 올해 기대수명 그래프가 출렁일 겁니다. 반면에 스웨덴과 핀란드는 경제위기 겪고 난 뒤 기대수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진 덕입니다. 한국도 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기대수명이 낮아지지 않았어요. 저학력, 저소득층도 다 같이 올라갔어요. 위기 대응을 잘한 거죠. 그 중심에 건강보험 제도가 있었습니다.”
오래 살 수 있게 해주는 건 돈이다. 그는 모든 질병의 치료비를 국가가 전액 지원하면 대다수가 100세까지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뒤집어 말하면 건강보험만으론 ‘100세 시대’를 열 수 없다는 거예요. 사람을 100세까지 살게 하려면 병원들이 비싼 장비를 갖춰야 합니다. 그러려면 병원이 영리법인화해서 고가 진료를 해야 돼요. 그 병원비는 부자들도 감당키 어려울 겁니다. 그러면 부자들을 위한 민간의료보험이 확산될 테고, 비싼 민간의료보험이 의료수가를 주도하게 됩니다. 건강보험은 주가 아니라 종이 돼버리는 거죠. 그렇게 되면 정말 계층별 기대수명 차이가 크게 벌어질 거예요. 그런 상황이 굉장히 조심스럽죠.”
물론 의료도 산업이다. 현재 건강보험 제도로는 기대수명이 82세 정도이니 더 오래 살려면 민간보험이 필요하다는 측면도 있다. 그는 이런 점을 인정하면서 “의료가 아닌 다른 길로도 장수에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돈으로는 할 수 없는 것
조 교수는 미국 유타주와 네바다주 예를 들었다.
“보건사회학에서 유명한 예가 유타주와 네바다주예요. 네바다주는 아주 잘살지만 범죄율이 높아 커뮤니티 질이 낮아요. 유타주는 소득이 적지만 종교인들 집단 거주지라 주민들끼리 관계가 좋아요. 잘 뭉치죠. 커뮤니티 질이 높다고 말합니다.”
네바다주 기대수명은 미국 전체 주 중 최하위권이다. 반면 유타주는 하와이와 1위 자리를 놓고 다툰다. 돈으로, 의료기술만으로 수명 끌어올리는 데엔 한계가 있고 부작용이 있으니 주민들의 관계, 친밀도, 신뢰, 사회참여율 같은 사회자본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못사는 지역에 돈 투입해 고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돈 들인다고 음주율, 흡연율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까요? 하지만 사회자본은 끌어올릴 수 있어요. 주민들 간 관계 회복 프로그램 같은 것이죠. 예를 들어 ‘노인에게 말벗 해주기 사업’ 같은 것이 기대수명을 높여줄 수 있어요.”
장수는 의료기술로만 도달하기 힘들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하자 사람들이 마스크 쓰고 다녔어요. 그렇게 되면 서로 말을 적게 하게 되고 관계망이 단절돼서 독거노인 자살률이 올라갈 것 같다고 우려했는데 실제로 2009년 노인 자살률이 상승했습니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