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문일] 궁핍한 작가와 풍요한 예술
입력 2011-02-24 17:58
미녀와 야수. 일본 소설가의 영예인 아쿠타가와상 제144회 수상작가들은 이렇게 불렸다. 성매매 업소인 풍속점(風俗店)에 가려고 일어서려다 수상 연락을 받았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 니시무라 겐타(43). 게이오대학에서 근세 가부키(歌舞伎) 연구로 박사과정에 있는 아사부키 마리코(26). 경력뿐 아니라 생김새까지 둘의 대비는 극명하다. 그런데 매스컴의 관심은 온통 야수에게 쏠렸다. 수상작이 게재된 ‘문예춘추’ 3월호는 75만부가 매진돼 5만부를 더 찍었다.
귀족과 천민. 아사부키의 집안은 아버지가 시인이자 게이오대학 불문학 교수, 할아버지도 게이오대학 불문학 교수였던 게이오 패밀리. 그 윗대에는 유명 정치인과 기업인이 즐비한 명문가의 재원(才媛)이 후보에 오르자 심사위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만장일치로 수상을 결정했다. 반면 니시무라는 아버지의 성범죄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어 중학교를 졸업하자 가출해 하루벌이 막노동 세계로 들어갔다. 그 뒤로 지금까지 두 개의 폭행 전과를 기록하며 친구도 여자도 없이 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전에도 후보에 두 번 올랐지만 수상 조건인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했다.
예술은 사적 영역
니시무라의 수상작 ‘고역열차(苦役列車)’는 그가 부두 냉동창고에서 수산물 하역 노동을 하던 19살 무렵의 에피소드이다. 생활도 인성(人性)도 황폐해진 주인공이 전문대학 재학생인 동갑의 아르바이트 노동자와 친해진 뒤 저지르는 우행기행(愚行奇行), 질투가 빚은 우정의 파탄을 담담하게 회고한다. 작가는 “자신의 치욕을 남의 일처럼 기술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직접 경험을 소재로 쓴 소설을 일본에서는 사소설(私小說)로 칭한다. 도쿄의 공원에서 얼어죽은 1920년대 무명 작가를 사숙(私淑)한다며 파멸적 자기폭로를 불사하는 니시무라는 프랑스 작가 장 주네(Jean Genet)와 방불하다. 문체도 인상적이다. 사실상 일인칭 소설이지만 삼인칭 시점으로 자신을 객관화한 문장이 웃음과 함께 신선한 느낌을 준다. 몸냄새 땀냄새가 물씬한 그의 소설은 남들이 흉내내기 힘든 독자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일용 노동 경력은 프리터(freeter)로 살아가는 일본 젊은이들 정서와 통(通)한다. 그가 사소설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관여(commitment)로 나아가는 씨앗을 틔울 수도 있다.
근자에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고독사(孤獨死)로 한국 사회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존재 양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어떤 이는 예술세계의 낮은 성공률을 지적하며 개인이 잘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이는 국가가 제도적으로 예술가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사(私)의 영역이 아닐까 한다. 국가가 보호하는 예술도 있지만 그 영역은 넓지 않다. 예술가 육성제도와 소비 시장이 정착된 주류 예술 분야라 하더라도 예술가로서의 입신(立身)에는 개인이 들이는 비용과 노력이 절대적이다. 요즘 문제가 된 서울대 음대 교수의 도제식 강압 교육이 그동안 묵인됐던 것도 사적 신고(辛苦)를 자립에 필요한 영양으로 보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일 게다.
치욕도 힘이 된다
예술도 본질은 대중에게 소비되는 상품이다. 고상함의 대명사인 클래식 음악이 유럽 귀족들의 대중음악이었다. 기술문명 시대의 대중예술은 놀랍게 발전했고 문화산업의 위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근대 이전의 예술 후원자들과 달리 문화산업에는 온정이 없다. 우리 사회의 문화자본은 산업혁명 시대의 냉혹한 자본논리를 닮았고 이 단계가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자본을 거부하는 젊은 예술가와 지망생이 있다면 니시무라처럼 부끄러운 이야기를 가지고라도 외길을 가는 배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때 치욕은 당신의 힘이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