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편견’ 미국을 고발하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입력 2011-02-24 18:08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단 와터스/아카이브

2004년 12월 25일 친구 딸의 결혼식에 참석차 스리랑카에 온 미국 뉴저지 정신보건관리국 이사장인 데브라 웬츠는 이튿날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쓰나미를 경험한다. 쓰나미의 공포를 직접 느낀 그녀는 생존자들이 평생 정신적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웬츠는 스리랑카 정부 관계자를 만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재앙이 들이닥칠 거라고 경고하는 한편 미국의 외상(트라우마) 전문가들을 스리랑카로 급파하는 계획을 세운다. 전 세계 전문가들도 수백만명의 스리랑카인이 PTSD라는 ‘2차 쓰나미’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했다.

웬츠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이 지역에는 마치 참전하듯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적 심리 개입이 시작됐다. 각종 전문가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몰려들었다. 그런데 이런 참여가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었을까?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했다. 재난이 일어난 뒤 세계에서 밀려든 기자들과 의사들은 현지 주민들이 예상과 다르게 행동하자 혼란에 빠졌다. 아이들은 쓰나미 경험을 얘기하기보다는 학교에 가는 일에 더 관심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고통을 부인하는 증세를 보인다고 제멋대로 진단했다.

서방 전문가들은 스리랑카인들이 수십년에 걸친 전쟁과 폭동, 가난 속에서도 외부 도움 없이 고통을 극복한, 놀라운 심리적 회복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스리랑카는 외상이 발생하면 곧바로 개입해야 한다는 서양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PTSD라고 불리는 미국식 치료법이 물밀듯이 밀려와 부지불식간에 현지의 견해와 관습이 열등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스리랑카인들이 스스로 긍정적인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마저 붕괴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처럼 인간 정신에 대한 미국식 진단과 처방이 얼마나 오만하고 위험한 일인지 고발하는 신간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가 나왔다. ‘뉴욕타임스매거진’과 ‘디스커버’ ‘와이어드’ 등의 매체에 전문적으로 글을 기고해온 저자 에단 와터스는 생물다양성 뿐만 아니라 문화다양성마저 사라져 가는 세계화 시대에 정신세계마저 균일화하려는 보이지 않는 세력의 음모와 그로 인한 부작용을 고발한다. 저자는 홍콩의 거식증과 스리랑카의 PTSD, 탄자니아 잔지바르의 정신분열병, 일본의 우울증 마케팅 등 4개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를 통해 정신 문제를 대하는 미국식 접근이 자칫 씻을 수 없는 정신적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책은 1994년 11월 홍콩에서 한 소녀가 음식을 거부하다 죽은 사례로 시작된다. 언론들은 비만에 대한 현대 여성들의 공포와 날씬한 몸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사건이라며 거식증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소녀는 미국 정신의학협회가 발표한 ‘정신질환 진단분류체계’에 수록된 거식증의 형태와 달랐지만 그래도 홍콩 사회에 거식증의 위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저자는 소녀의 죽음을 추적하면서 서양의 거식증 개념이 중국 문화의 심층에 깔린 자발적 기아의 기묘하고 특이한 형태를 덮어버렸다고 지적하고 이후 홍콩에서 거식증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점에 주목한다.

“거식증을 홍콩 대중이 인식하고부터 현지 의사들은 섭식장애 환자가 증가하는 것을 느꼈다. 거식증 환자를 1년에 2∼3명 진찰했던 의사들은 이제 매주 여러 명의 새 환자를 관찰했다. 모든 신문기사, 잡지 논평, 텔레비전 프로가 거식증을 젊은 여자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표현하는 극적인 방법이라고 묘사했다. 이 생각이 되풀이될 때마다 홍콩 주민의 무의식에 작용하는 그 질환의 인력은 꾸준히 증가했고, 10대 소녀가 자신의 내적 고통을 전달할 수단으로 식사거부를 시도할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졌다.”(66∼67쪽)

저자는 이어 산호섬 잔지바르로 독자를 안내하고 정신분열증을 겪는 딸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서양이 질병을 만들고 분류해 정신질환자로 낙인찍고 격리하는 방식으로 통제를 시도하는데 반해 잔지바라의 가족은 정신적 고통과 치유에 관해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을 보여준다.

저자는 정신 문제에 대한 미국식 세계화의 이면에는 이익만 찾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음모와 자신만이 진리라고 믿는 미국 전문가들의 오만함이 자리 잡고 있다고 비판한다.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불도저 앞에서 아직 남은 종을 필사적으로 기록하는 식물학자처럼, 저자는 정신건강에 대한 문화적 이해의 다양성 안에는 우리가 절대로 잃어버려선 안 되는 지식이 가득하다고 부르짖는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