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임대시장서 사라지나… 傳貰의 운명

입력 2011-02-24 18:31


1998년 서강대에서 사회학 석사과정을 밟은 일본인 한도 지즈코는 전세(傳貰)제도에 관한 논문을 썼다. ‘저소득층 전세제도의 사회적 합리성에 관한 연구’.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주택 임대 방식이다. 해외에선 일본 오사카 한인 거주지에서나 비슷한 거래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인 유학생에게는 참 이상한 제도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적었다. “돈을 내면서 마음대로 이사도 못 가고 잘 모르는 집주인에게 고액 보증금을 맡겨야 한다. 불합리한 요소가 너무 많다. 세입자가 생면부지 집주인과 주저 없이 맺는 전세계약서에는 단지 7∼8행의 문장이 있을 뿐이다.”

그는 서민들이 사는 동네를 찾아다니며 세입자와 집주인을 심층 면접했다. 왜 한국에서만 이렇게 오래도록 이 제도가 유지되고 있는가. 그가 찾아낸 답안 중 하나는 “한국인은 전세를 가장 안정적인 저축 수단으로 인식해왔다”는 거였다.

“재원이 부족한 한국 서민들은 서로 돈을 융통하며 도와야 하는 관계다. 친구나 친척이 돈을 빌려달라면 가능한 한 응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서민들의 큰 자산인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원만히 해결해준 게 전세였다. 최소한의 생활기반인 집을 위한 전세금이라면 친지의 부탁을 거절해도 의리가 상하지 않는다. 돈을 모으는 좋은 핑계를 전세제도가 제공해준 것이다.”

이 논문을 준비할 때 우리나라 1300만 가구 중 44%(95년 인구센서스)가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세입자 가운데 전세는 67%. 이 비율이 2000년 인구센서스에서 65%로, 2005년엔 52%로 줄었다. 아직 집계 중인 지난해 인구주택총조사에선 월세가 전세를 추월했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은행은 부동산 중개업자를 상대로 매월 주택 임대차계약의 전·월세 비율을 조사한다. 지난달 체결된 계약 중 월세는 43%였다. 2008년 1월의 40.6%보다 증가한 것은 기존 전세를 월세로 바꾸거나 반전세(보증부 월세)로 전환하는 집주인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한국의 독특한 전세제도, 과연 수명이 다한 것일까.

전세, 스스로 설계한 주거복지

60∼70년대 서울역을 상상해보자. 먹고 살기 힘든 시골에서 일자리 찾아 상경한 사람들이 처음 서울과 만나는 곳. 가족을 이끈 가장의 짐 보따리 제일 깊숙한 자리에는 전답 몇 마지기 팔아 마련한 전 재산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 돈의 액수는 너무 작았고, 동시에 너무 컸다. 서울에서 변변한 집을 사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도시에서 살아갈 유일한 밑천이기에 결코 쉽게 써버릴 수 없는 돈이다. 이런 사정을 절묘하게 헤아려준 것이 전세였다. 종잣돈을 지키면서 살 집을 구할 수 있도록.

1910년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관습조사보고서에 전세제도 관련 기록이 처음 나온다. ‘전세는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인 가옥 임대차 방법이다. 차주(借主)가 일정한 금액(가옥 가격의 반액 내지 7, 8할)을 소유자에게 기탁하며 별도의 차임(借賃)을 지불하지 않고 반환 시 기탁금을 돌려받는다.’

전세는 원래 서울의 곡물창고 임대 방식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곡물뿐 아니라 사람이 서울로 몰려들면서 주택 임대 방식이 됐고, 6·25전쟁 이후 급속한 도시화·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전국에 확산됐다고 한다. 그런데, 먼저 산업화 과정을 겪은 외국에는 이런 제도가 없다.

조성찬 토지+자유연구소 토지주택센터장은 “유럽은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노동자를 위해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해 제공했지만, 한국은 단기간에 산업화가 진행되다보니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농민들이 도시로 대거 유입됐다. 런던과 맨체스터에는 이들이 무허가주택을 짓고 사는 ‘도시 불량촌’이 형성됐다. 마땅한 화장실도 없어 전염병 등 위생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을 보급했다. 국가가 국민의 주거복지를 챙기는 ‘사회주택’이 등장한 것이다. 1·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의 집들이 파괴되면서 유럽의 공공주택 건설은 더욱 확대됐다.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개발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값싼 노동력인데, 그게 확보되려면 노동자들이 도시로 진입해 살 집이 있어야 한다. 6·25전쟁을 겪고 난 한국 정부는 공공주택을 보급할 여력이 없었다. 전세는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 설계한 일종의 주거복지”라고 했다.

전세는 집주인들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 80년대 이전만 해도 개인이 금융기관에서 돈 빌리기란 쉽지 않았다. 가용 자원을 최대한 산업개발에 투입하던 시절 가계대출 문턱은 높았고, 금리도 감당키 어려운 수준이었다. 목돈을 마련하려면, 집을 빌려주는 게 가장 쉬웠다.

전세, 거주이전의 자유

회사원 이모(38)씨는 2007년 서울 강북구에서 경기도 일산으로 이사했다. 강북구에 갖고 있던 아파트는 전세 주고, 일산에서 전세로 산다. 초등학생 딸의 교육을 위해 신도시로 가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씨의 언니도 일산 외곽에 아파트를 갖고 있지만 사는 곳은 일산 도심이다. 아파트를 산 곳은 이제 막 개발된 동네여서 주거 환경이 갖춰진 곳에 전세로 살고 있다.

이씨 자매와 같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 서울 강남 등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하는 현대판 ‘맹모(孟母)’ 현상이 가능했던 것은 전세라는, 세입자 입장에서 매우 ‘값싼’ 주택 임대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집을 사서 옮길 형편은 못 됐고, 월세를 내야 했다면 매달 수입에서 나가는 지출이 너무 커서 이사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통계청은 지난 17일 ‘2010년 국내 인구이동 통계’를 발표했다. 지난해 읍·면·동 경계를 넘어 이사한 사람은 822만명. 인구 100명 당 이동자 수인 인구이동률은 16.5%로 36년 만에 최저였다. 전세난과 주택경기 침체가 원인으로 꼽혔다. 전셋값 급등에 살고 싶은 곳으로 이주하는 행렬도 줄어들었다.

강미나 국토연구원 주거복지센터장은 “긍정적으로 보면 전세는 계층간 상향 이동을 가능케 한 사다리, 또는 디딤돌이었다. 서민에게 전세금은 일종의 강제저축 효과를 가져다줬고, 잘사는 동네와 못사는 동네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도 했다”고 말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손재영 교수는 전세를 “주택 임대차 거래의 바겐세일”이라고 말한다. 전셋값을 은행에 맡겼을 때 받을 수 있는 이자만큼만 기회비용을 포기하면 되고, 원금도 보장된다. 가계대출이 원활해진 80년대 이후에도 집주인들이 이렇게 저렴한 임대를 수용한 것은 집값 상승 때문이다.

손 교수는 “집이 남아서 빌려주는 게 아니라 집을 사려고 빌려준다. 집값이 계속 올랐기 때문에 전세 끼고 집을 사면 적은 비용에 훌륭한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월세 수입보다 집값 상승 차익이 훨씬 커서 전세제도가 유지돼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80년대 말과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인 90년대 말, 전세대란이 벌어졌다. 그런데 양상이 정반대였다. 올림픽을 앞두고 부동산 개발 붐이 일면서 집값이 뛰자 전셋값도 함께 치솟았다. 비싸진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가장들이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잇따랐다.

90년대 말에는 세입자와 집주인의 갑을관계가 뒤바뀌었다. 외환위기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전셋값도 떨어지자 계약이 만료된 세입자들은 더 싼 전세를 찾아 이동했고, 집주인들이 그들에게 내줄 전세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지금 벌어지는 전세대란에서 갑은 다시 집주인이다.

전세, 존폐의 공식

회사원 채모(43)씨는 2007∼2008년 해외연수를 떠나며 서울 서초구 집을 전세로 임대했다가 낭패를 봤다. 전세금을 받아 불려보려는데 은행 금리가 성에 차지 않아 주식형 펀드에 맡겼다. 연수에서 돌아오니 글로벌 금융위기로 펀드는 거의 반토막이었다. 집값과 전셋값도 폭락해 전세보증금 내줄 방법이 없어서 결국 집을 팔았다. 그는 “다시 그런 상황이 생기면 무조건 월세를 주겠다”고 한다.

반세기 이상 한국인 경제생활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던,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전세제도가 과연 사라질까. 전문가들은 5년, 10년 안에 그렇게 되지 않겠지만 서서히 줄어들다가 소멸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 정책이 아니라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탄생한 제도여서 그 시기도 시장이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권주안 선임연구위원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에선 (전세가) 사라질 수 없다.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이 300만원 정도인데, 70∼80만원 월세 내면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 월세가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낮아질 정도로 소득이 증가하거나 그런 월세를 내고도 삶의 질이 유지될 만큼 사회보장이 이뤄져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용 국토연구원 주택토지건설경제연구본부장은 임대인 수익률 분석 모델을 이용해 전세 존폐의 공식을 제시했다. “집주인의 수익률을 시뮬레이션 해보면 집값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연 3∼5% 수준일 경우 집주인의 수익은 전세나 월세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게 10% 정도로 커지면 전세 주는 게 더 낫고, 2% 이하면 월세가 유리해요. 지금 집주인들이 월세로 바꾸는 건 집값 상승률이 2% 이하이기 때문입니다. 전세의 운명은 결국 집값에 달렸어요.”

조성찬 선임연구위원은 “전세는 서민들에게 굉장히 유리한 제도여서 시장이 버리더라도 정부는 버리면 안 된다.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에선 전세 시스템을 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