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탁석산의 스포츠 이야기] 격투기와 축구 황제의 은퇴 소식

입력 2011-02-23 18:12

한때 ‘60억분의 1의 사나이’로 불렸던 격투기 황제 표도르가 패배했다. 재기전에서도 패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진 적이 없다가 최근 2연패했고 나이도 들어가는 상황이라 은퇴가 예상됐지만 며칠 후 은퇴를 번복했다. 하지만 다시 경기에 나오려면 꽤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이번 부상이 심했기 때문이다.

거의 같은 때 새로운 축구 황제로 불렸던 호나우두가 은퇴를 선언했다. 호나우두의 은퇴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몇 년 전부터 몸이 심하게 불어 뛰는 것이 버거워보였기 때문이다. 갑상선 이상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호나우두는 사생활에서 추문이 이어졌기에 그의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잊히고 있었다.

두 황제의 은퇴 소식에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스타의 은퇴 소식은 달도 차면 기운다는 세상의 이치도 다시 생각하게 하고, 팬인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느낌이 들게 하기에 조금은 마음이 허전해진다.

은퇴 후 스타들의 삶이 순탄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범죄에 연루된 경우도 있었다. 그동안 받았던 관심과 환호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트가 사라진 무대 위에 홀로 남겨진 배우와 같다고나 할까. 제2의 인생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은퇴 후 평범하게 살면서도 유쾌하게 살아가는 선수를 본 적이 있다.

앞의 두 황제가 태어난 1976년, 당시 WBA 세계주니어미들급 챔피언이었던 유제두는 타이틀 2차 방어전에서 자신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던 와지마 고이치에게 패하고 말았다. 당시만 해도 권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라 온 국민의 관심사였다. 그것도 일본 선수에게 패하다니.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몇 년 전 우연히 일본 텔레비전에서 와지마를 보았다. 그는 몇 평 안 되는 조그만 과자 가게를 하고 있었다. 직원은 두세 명 정도였던 것 같고, 빵 비슷한 것을 직접 구워서 파는 곳이었다. 사장인 그는 매우 유쾌했다.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기도 했고 농담도 했다. 왕년에 세계 챔피언을 지낸 권투선수였다는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귀여운 편이었다. 행동거지나 말과 표정에서 옛날 파이터의 흔적은 없었다.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은퇴 후 저렇게 쾌활하게 살고 있다니.

유제두는 지금까지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복서로서 자연스러운 은퇴 후 모습일 것이다. 화면을 통해서라도 본 적이 없어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도 와지마와 만나는 사이라고 하니 잘사는 것으로 보인다. 표도르는 평소에 가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훗날 와지마처럼 귀엽고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호나우두는 여전히 축구계에 남아 있지 않을까.

탁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