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루이 9단의 끝없는 바둑 열정
입력 2011-02-23 17:56
루이나이웨이 9단은 1963년생으로 곧 지천명(知天命·50세)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녀는 86∼89년 중국 여자개인전 4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중국위기협회의 9번째 9단이 되었다. 92년에는 응씨배 4강에 진출했고, 세계 최초의 여자바둑대회인 보해배에서 1, 3, 4회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여류 최강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정치적 이유로 망명을 하게 되고 그때부터 힘겨운 떠돌이 생활이 시작됐다.
루이 9단은 남편 장주주 9단과 함께 바둑보급 활동을 하며 미국과 일본, 유럽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프로기사로서, 승부사로서 바둑을 둘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당시 바둑 강국이었던 일본에 여러 차례 문을 두드렸지만 보수적인 일본은 그녀를 완강히 거부했다. 그리고 99년 운명적으로 루이 9단과 장주주 9단은 한국의 객원기사로 받아들여졌다.
승부에 대한 목마름과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루이 9단은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전장을 휘젓고 다녔다. 99년 여류국수전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국수전 도전기에서 조훈현 9단마저 꺾으며 여류 최초로 본격기전에서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해 당당히 여류 기사상을 차지했다.
당시는 여류기사는 인원도 많지 않았고 ‘꽃조’라 불릴 정도로 들러리에 지나지 않던 시절이었다. 루이 9단의 기세는 이후로도 매서웠다. 국내 여류기전 전관왕에 올랐고 유창혁 9단을 상대로 입신 최강전에서 우승을 했다. 그리고 한국리그 본선에 진출하는 등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7년 후. 루이의 독주 체제가 심하다고 생각될 즈음 조혜연 9단이 여류명인전에서 2대 1로 승리하며 루이의 공고한 아성에 금을 냈다. 많은 바둑 팬들과 바둑 관계자들은 환호했고, 루이 9단을 받아들인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었다. 이후 2008년 여류세계대회 원양부동산배에서 박지은 9단이 우승했고, 루이 9단이 중국대표로 출전한 정관장배에서도 한국이 우승을 차지했다. 2010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은 루이 9단이 포함된 중국을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여류기사들은 많은 성장을 보였다. 지금은 한국여자바둑이 세계 1위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루이 9단은 건재하다. 얼마 전 벌어진 STX 여류명인전에서 조혜연 9단을 제압하며 개인통산 31번째 우승, 여류명인전 7년 연속 우승을 이어가고 있다. 여류기성전에서도 결승 진출했다.
철옹성 같은 루이 9단. 그녀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바둑의 기술이 아니다. 바둑을 대하는 마음가짐, 바둑을 향한 열정이다. ‘바둑을 둘 수 있는 그곳이 천국이다’라는 그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김효정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