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처방전 따로, 약 복용 따로

입력 2011-02-23 17:40


시골에 사는 기자의 아버지는 수년째 ‘알코올성 간경변증’을 앓고 있다. 간이 점점 굳어가는 중증 간질환이다 보니 4종류의 간장약을 하루 세 차례 꼬박꼬박 복용해야 한다. 주치의는 진료 때마다 “술은 절대 마셔선 안 되며 처방 약도 빼 먹지 말고 드셔야 더 이상 상태가 나빠지지 않는다”며 신신당부한다. 기자 또한 안부 전화 때마다 “시간 맞춰 꼭 약 챙겨 드시라”고 재차 강조한다. 하지만 “약 먹는 걸 깜빡 했다거나 이젠 괜찮으니 안 먹어도 될 것 같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명절 때 집에 내려가면 많게는 한 달치 약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속상해했던 적도 있다. 고향에 병든 부모님을 둔 자식이라면 대부분 기자와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다.

환자는 병 치료를 위해 의사 처방에 따라 제때, 정확하게 그리고 꾸준히 약을 복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암 같은 중증 질환이나 고혈압 당뇨 간질환 등 만성병의 경우 초기 치료비용 절감과 조기 사망 예방을 위해 더욱 그러하다. 약을 제때 먹지 않거나 용량을 임의로 바꿔 복용할 경우 치료 효과가 최대 30%가량 감소하고, 사망 위험은 3배가량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중증 질환자 3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처방약 복용 실태 조사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다. 암, 희귀난치병 등 중증 질환자 3명 중 1명 꼴(35.1%)은 최근 1년 기준으로 약 복용을 임의로 1회 이상 중단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약을 거른 이유로는 ‘약 먹는 것을 잊어버려’가 44%로 가장 많았고, 이어 ‘약 부작용이 심해서’(21.2%), ‘가끔 복용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12.6%), ‘약 먹는 것이 귀찮아서’와 ‘증상이 좋아진 것 같아서’(각각 8.1%), ‘약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2.5%), ‘약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2%) 등 순으로 나타났다.

어쩌면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약 복용을 잊는다든가 약 먹는 것이 귀찮아서’ 같은 응답이 많이 나온 걸 보면 우리나라 환자들의 의약품 복용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더구나 ‘먹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 증상이 좋아진 것 같아서’ 같은 자의적 판단에 따른 약 미복용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상황은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는 만성 질환자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해 12월 서울대 간호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혈압, 당뇨 등 만성 질환자들이 의사 처방전대로 약을 복용하지 않는 비율이 23%나 되며 미복용 이유 역시 ‘약 먹는 것을 잊어버려서’(48.9%)가 가장 많았다. 환자들이 의사 처방대로 약을 먹지 않을 경우 병의 악화나 사망위험 증가 등 개인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입원 증가, 치료비용 추가 등이 발생해 결국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복약 순응도(의사 처방대로 약을 복용하는 정도)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최근 환자단체연합회와 다국적제약산업협회가 보건복지부와 함께 국내 처음으로 시작한 ‘처방전대로 약 복용하기-락(樂)&약(藥)’ 캠페인에 거는 기대가 크다. 두 단체는 앞으로 환자 및 가족 대상 교육용 뉴스레터 발송, 전국 보건소와 노인복지회관 및 주요 병·의원에 복약 순응도 개선 홍보 포스터 배포, 병원별 교육 간호사 대상 강의 진행 등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인식 개선 캠페인을 넘어 환자, 가족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방법도 적극 모색됐으면 하는 점이다. 예를 들면 약 복용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 등 보조기구를 개발해 각 가정(특히 농촌 지역 먼저)에 보급하는 것이다. 또 병원 원격 서버에서 관리되는 스케줄에 따라 가정과 실버타운 등에 설치된 약 상자를 통해 약 복용 시간과 방법을 안내하고, 약 상자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약 복용 여부를 감지하는 스마트 모니터링 시스템의 개발도 추진해 볼 만하다. ‘IT 강국’ 한국의 과학기술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민태원 문화과학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