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상온] 이젠 ‘核 보유국 북한’ 대비로 전환해야
입력 2011-02-23 17:40
“더 이상 북한의 핵 포기에만 집착해선 안 된다. 북한 핵 대응책이 시급하다”
솔직히 말하자. 북한의 핵무기 포기는 물 건너갔다. ‘비핵·개방 3000’도 ‘그랜드 바긴’도 ‘허공중에 흩어진 이름’이다. 엊그제 보도됐듯 북한은 3차 핵실험을 착착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기가 문제일 뿐 3차 핵실험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 정도면 북한은 이미 명실공히 핵보유국이다. 아무리 수긍하기 싫어도 인정할 건 해야 한다.
지난 연말 유엔 총회는 ‘핵무기 전면 폐기를 위한 단일행동’이라는 결의를 채택했다. 그리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아래서’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NPT는 1967년 이전 핵보유국, 곧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5개국만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 다른 나라들은 실제 핵 보유와 상관없이 모두 비핵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유엔 총회의 결의 선언은 명목상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6자회담 등 북한의 핵 포기를 겨냥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 않느냐고? 북한 역시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지 않느냐고? 그렇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액면과는 다르다는 게 내 생각이다. 확신에 가까운.
우선 6자회담. 남북한을 제외한 참가국, 즉 주변 4강은 모두 표면적으로 북한의 핵 보유를 ‘절대 반대’한다. 하긴 그게 6자회담의 공식적 존재이유니까. 그러나 과연 속내도 그럴까?
미국의 경우 북한의 핵 보유는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핵보유국 지위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 정부와 군 고위 관계자들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미국이 북한 핵을 암묵적으로 용인해 자국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복안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단언하지 못한다.
러시아, 중국과의 핵 대결 가능성이 극히 낮아진 현 상황에서 핵을 가진 새로운 ‘적’으로서 북한의 존재를 필요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미사일 방어(MD) 체제를 공고히 하는 한편 최악의 경우 미국이 핵 테러를 당했을 때 희생양으로서 핵보유국 북한이 있어주는 게 좋다. 9·11테러 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을 생각해보라.
가장 적극적으로 6자회담을 밀어붙이고 있는 중국은 어떤가? 북한이 핵보유국이 됐다 해도 잃는 게 없다. 중국은 북한이 생명줄인 자국을 공격할 리 없고, 미국이 자국을 의식해 섣불리 북한을 공격할 수도 없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 만큼 오히려 핵보유국 북한 카드를 한·미·일 3각동맹에 대한 방파제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 북핵과 관련해 사사건건 북한을 옹호하는 게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6자회담은 의장국으로서 미국과 동북아 패권다툼에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볼 수 있다.
일본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미국과의 군사동맹으로 북한의 핵 공격이 현실적 걱정거리인 일본은 일면 우려하면서도 일면 군비확장을 통한 군사강국화에 북한 핵을 이용할 수 있다. 러시아 역시 이랬다 저랬다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중국처럼 북한의 핵 보유를 반미구도의 하나로 이용하려는 저의가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6자회담은 심하게 말해 세계 최강국들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국제사회에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과시하려는 일종의 ‘쇼’일지도 모른다. 그럼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주장은? 그것이야말로 ‘쇼’다. 핵무기 개발 전이라면 몰라도 개발한 이상 포기는 없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북한이 가진 것이라곤 그것밖에 없는 바에야.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도 이제는 북핵 포기 노력에서 핵보유국 북한에 대비하는 것으로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 냉전시대의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이 남북한 간에도 요구된다. MAD가 냉전의 열전화를 막았듯 그것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지켜야 한다. 자위용 자체 핵개발을 추진하고, 여의치 않다면 미국의 전술 핵이라도 다시 들여오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김상온 카피리더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