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었다∼ 녹았다∼ 雪 좋은 날, 황태는 익어가고… 추워야 제맛! 눈덮인 황태덕장

입력 2011-02-23 17:50


바람과 햇볕이 쌓인 눈을 걷어내자 평창군 대관령과 인제군 용대리의 황태덕장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얼기설기 엮은 통나무에 수만 마리의 명태가 주렁주렁 걸린 황태덕장은 대관령과 진부령을 대표하는 겨울풍경. 하얗게 얼어붙은 설산과 계곡이 황태덕장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

황태의 본고장은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대관령 인근의 횡계마을. 해마다 이맘때면 봄을 시샘하는 폭설이 내려 눈 속에서 봄을 맞는 마을이다. 올해는 60∼70㎝에 이르는 눈폭탄이 쏟아져 황태덕장의 겨울풍경이 더욱 멋스러워졌다.

횡계마을에 황태덕장이 들어선 때는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원산 등에서 황태덕장을 하다 월남한 ‘함경도 아바이’들이 호구지책으로 대관령을 넘어 횡계마을에 덕장을 꾸렸다. 횡계를 비롯한 대관령 일대가 해발 800m 높이의 산간지역으로 기후가 함경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때/(중략)/ 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양명문의 시에 작곡가 변훈이 곡을 붙인 ‘명태’는 향수를 자극하는 가곡이다. 미라처럼 바짝 마른 명태는 예로부터 외롭고 가난한 시인의 안주가 될 정도로 흔한 생선이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동해에서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러시아 근해에서 잡은 원양 명태가 옛 명성을 대신하고 있다.

명태만큼 다양한 이름을 가진 생선도 드물다. 조선후기 이유원의 문집인 ‘임하필기’에 의하면 명태는 명천에 사는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잡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명태는 상태에 따라 싱싱한 생물이면 생태, 얼리면 동태, 말리면 북어 또는 건태로 불린다. 너무 추워 하얗게 마르면 백태, 날씨가 따뜻해 검은 색이 되면 흑태가 된다.



명태는 잡는 방법에 따라서도 이름이 달라진다. 북방 바다에서 잡으면 북어, 그물로 잡으면 망태, 낚시로 잡으면 조태, 강원도 연안에서 잡으면 강태, 그리고 함경도 연안에서 잡은 작은 명태는 왜태로 불린다. 뿐만이 아니다. 살이 부서지면 파태, 원양어선에서 무게를 줄이기 위해 머리를 잘라낸 몸통만 건조시키면 무두태,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건조하면 통태로 부른다.

바람에 세고 적설량이 많은 대관령은 황태 생산의 최적지로 꼽힌다. 여기에 햇볕이 많고 기온이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많아 대관령에서 생산된 황금빛 황태는 으뜸으로 꼽힌다. 잘 익은 황태는 더덕처럼 부드럽게 찢어지고 약효도 뛰어나 ‘더덕북어’로도 일컬어진다. 안줏감으로 혹은 해장국으로 사랑을 받는 황태지만 식탁에 오르기까지 서른세 번 손이 가야하기 때문에 농사짓는 만큼이나 힘들다.

횡계마을의 황태덕장은 영동고속도로 횡계IC와 송천, 그리고 옛 영동고속도로 주변에 7∼8개가 들어서 있다. 인제 용대리의 황태덕장이 면적을 넓혀가는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으나 최근 황태의 소비량이 늘어나자 옛 영동고속도로 주변까지 황태덕장이 들어선 것이다. 이중 횡계IC와 옛 영동고속도로 주변의 황태덕장은 풍경이 아름다워 달력그림으로도 손색이 없다.

러시아에서 수입한 명태는 여름철 주문진 등 동해안에서 할복과 세척 작업을 거쳐 냉동된다. 12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대관령의 날씨가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통나무를 엮어 세운 덕장에 배를 가른 명태를 내거는 상덕작업이 시작된다. 덕장은 보통 2층으로 만들어진다. 한 줄이 20∼30칸으로 이뤄지고 한 칸에 명태를 거는 고랑대 10개가 설치된다. 이 고랑대에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노끈으로 명태를 두 마리씩 묶어 건다.

넉달 동안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기를 거듭한 황태는 3월말 쯤 덕장에서 내려져 싸리나무로 머리를 꿰는 관태 작업을 한다. 그리고 기계로 알맞게 두드려 부드럽게 만든 뒤 반을 갈라 포장하면 말린 명태의 최상품인 황태가 완성된다. 예로부터 해독작용이 뛰어나 약재로도 쓰인 황태는 저지방 고칼슘 식품으로 찜, 구이, 찌개, 조림, 전, 불고기 등 다양한 요리로 이용된다.

진부령과 미시령 코앞에 위치한 인제의 용대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황태촌. 횡계마을과 달리 용대리가 황태덕장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은 불과 20여년 전이다. 1999년부터 황태축제가 열리면서 인기가 높아져 지금은 30여개 덕장에서 한해 100만 마리의 황태가 생산되고 있다.

‘황태의 80%는 하늘이 만들어준다’고 할 정도로 황태는 용대리와 대관령처럼 추운 지역에서 말려야 제 맛이 난다. 살이 통통한 황태는 출하기인 봄에 바람이 강하게 불어야 썩지 않고 건조된다. 용대리의 경우 ‘풍대리’로 불릴 정도로 바람이 강해 황태 건조장으로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용대리의 황태덕장은 46번 국도와 함께 달리는 북촌 주변에 밀집되어 있다. 계곡에서 부는 칼바람의 길목에 덕장을 설치해야 황태가 잘 건조되기 때문이다. 특히 인공빙벽으로 유명한 매바위를 배경으로 한 작은 황태덕장은 빙벽을 타는 클라이머들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린다.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말이 있다.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굳이 하려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대관령과 용대리 황태마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동네다. 연목구어의 기적을 이른 황태마을에서 모진 한파를 이겨낸 황태가 눈밭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다.

평창·인제=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