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으로 본 기독교 100년] 해타론(길선주 지음, 대한성교서회, 1904)

입력 2011-02-23 17:35


‘해타론’은 1901년 길선주가 쓰고 1904년 대한성교서회에서 발행한 전도책자인데 순한글 세로쓰기로 되어 있다. 책 제목의 ‘해타’란 성취국(成就國)으로 가는 길을 막아서는 흉측한 짐승을 말하는데 게으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간은 성취국에서 각자 맡은 직분을 다하고 예수님의 인도에 따라 영생국(永生國)으로 가야 하지만 걸음이 느린 사람들은 악한 냄새를 뿜어내는 해타 짐승에게 잡아먹힌다고 한다. 말하자면 신앙생활에서 게으름을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평안도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저자(1869∼1935)는 10대부터 관운장을 섬기는 관성교, 유교 불교 등에 심취했고 선도(仙道) 수행을 하여 20대에 이미 도인으로 통했다. 그러다가 친구 김종섭의 끈질긴 전도로 기독교 서적을 읽고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는데 ‘천로역정’에서 가장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기도 중에 ‘길선주야! 길선주야!’ 하고 자신을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하고 신자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후 길선주는 ‘해타론’의 저자답게 맹렬한 신앙생활에 들어간다. 1897년 선교사 그레이엄 리에게 세례를 받았고 1902년 전도사가 되어 목회에 전념했다. 1903년에는 마펫이 설립한 평양장로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성경 연구에 매진했다. 또한 한일합방 수년 전부터 매일 새벽 교회에 나가 구국기도회를 주도하였다. 이것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고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회로 정착되었다.

1906년 가을부터 장대현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시작된 새벽기도회의 뜨거운 열정은 이듬해 평양부흥운동을 촉발시키게 된다. 1907년 1월 14일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집회 도중에 길선주는 갑자기 엉엉 울면서 교인들 앞에서 죽은 친구의 재산을 관리하다가 미화 100달러를 훔쳤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회개한다. 이 길선주의 회개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의 회개가 빗발쳤고 이것이 평양 부흥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이후 한국 기독교는 선교사들보다 더 깊은 신앙 체험을 한 한국인 목회자와 신도들을 통하여 급속하게 성장 발전하였다.

길선주는 신학의 토착화에도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해타론’에서도 해타를 극복하고 성취국에 들어간 인물로 동양의 성인군자를 거론하고 있다. 즉 백성의 정사를 거리에 나가 직접 살핀 요임금, 농업에 힘쓴 순임금, 서적의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공부한 공자 등을 사도 바울과 함께 꼽은 것이다. 저자는 특히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산에 가서 기도하고 돌아와 보니 제자들이 게을리 잠자고 있었다. 이때 하신 말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라’가 바로 해타론의 메시지다.

1907년 9월 목사 안수를 받은 길선주는 유명한 부흥사였다. 실명 위기에 처할 정도로 독서광이었으며 ‘해타론’ 외에도 ‘만사성취’ ‘강대보감’ ‘말세학’ 등의 저술을 남겼다. 그는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던 1930년대에는 말세론 신앙을 설교하며 고통 받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했다. 그의 ‘해타론’과 말세론은 연결된 하나의 고리로서 암울한 시대를 극복하려 했던 신앙적 결단의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해타론의 마무리에서는 긍정의 정신을 이렇게 강조한다.

“성취국의 길목을 막는 마귀의 표시는 국문으로 넉 자니 ‘할 수 없다’ 한 말이요, 성취국으로 들어가는 고난(苦難)산 주인의 표시는 ‘할 수 있다’ 한 말이라.”

부길만 교수(동원대 광고편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