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리비아] 카다피 “시위대와 끝까지 싸워 순교자로 죽겠다”… 국영TV연설 퇴진 거부

입력 2011-02-23 02:20

“리비아를 봐라. 사람들은 영광을 원한다. 이 상황은 내전이 아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22일 오후 6시쯤(현지시간) 국영TV에 등장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지난 15일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지 8일 만에 그가 이날만 두 번이나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카다피가 오전 2시에 이어 오후 6시에도 국영 TV에 등장해 격앙된 어조로 “나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리비아에 영광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탁자를 손으로 치며 건재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시위대와 끝까지 싸워 순교자로 명예롭게 죽겠다”며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오전 2시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수도 트리폴리 자택으로 추정되는 건물 앞의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창문 밖으로 우산을 들고 있었다. 검은 색 점퍼 차림에다 귀덮개가 늘어진 방한모자를 눈썹이 덮일 정도로 눌러쓴 그는 수척하고 지쳐 보였다. 운전석엔 아무도 없는 등 부자연스럽고 기괴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는 기자가 내민 소형 마이크 앞에서 “길 잃은 개들(stray dogs)을 믿지 마라”며 망명설을 연일 언급하는 서방 언론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CNN 방송이 보도했다. 이어 “나는 녹색광장의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며 밤새고 싶었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카다피의 두 차례 방송 출연은 다양한 의미가 함축된 행보로 풀이된다.

건재를 과시함으로써 리비아군과 정부 인사들의 이탈 러시를 막아 내부 결속을 다지겠다는 뜻이다. 특히 자신의 마지막 보루인 11만9000명 규모의 군을 향해 단결을 호소하는 메시지다. 리비아를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도 포함됐다.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대화 시도’라는 유화적 메시지를 던진 건 초강경 진압을 앞둔 마지막 자제 호소로 풀이된다.

반대로 리비아 상황이 자신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이 지난 20일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지만 반정부 시위대의 기세를 전혀 꺾지 못했다. 카다피가 반정부 시위 진압을 전면에서 지휘하는 ‘공포시대’가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영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