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리비아] 카다피 “개들을 믿지마라”… 시위대에 대화 제스처

입력 2011-02-22 18:42

“나는 여전히 트리폴리에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22일(현지시간) 국영 TV에 등장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지난 15일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지 8일 만에 그가 처음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카다피가 국영 TV에 등장한 때는 오전 2시쯤이다. 자택으로 추정되는 건물 앞에 있는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창문 밖으로 우산을 들고 있었다. 트리폴리에는 이틀째 비가 내리고 있다.

그는 “언론에 나오는 ‘개(dog)’들을 믿지 마라”며 망명설을 연일 언급하는 서방 언론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CNN 방송이 보도했다. 그는 이어 “나는 녹색광장의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과 밤새 지내고 싶었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카다피의 방송 출연은 22초 정도였지만 다양한 의미가 함축된 행보로 풀이된다.

우선 건재를 과시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리비아군과 정부 인사들의 이탈 러시를 막아보겠다는 의지다. 특히 자신의 마지막 보루인 11만9000명 규모의 군을 향해 단결을 호소하는 메시지다. 물론 어떤 일이 있어도 리비아를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도 포함됐다.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서는 ‘대화 시도’라는 유화적 메시지를 던진 건 초강경 진압을 앞둔 마지막 자제 호소로 풀이된다.

반대로 리비아 상황이 자신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이 지난 20일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지만 반정부 시위대의 기세를 전혀 꺾지 못했다. 이에 따라 카다피가 향후 반정부 시위 진압을 전면에서 지휘하는 ‘공포시대’가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카다피가 사실상 퇴진을 앞둔 마지막 수순에 돌입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퇴진 하루 전 국영 TV 연설을 통해 ‘즉각 사임’을 거부하며 버텼지만 결국 물러났다. 그 전철을 카다피가 밟고 있다는 것이다. 카다피의 ‘42년 철옹성’이 붕괴 국면에 직면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