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리비아] 해외주재 외교관들도 카다피에 잇따라 반기
입력 2011-02-22 18:35
리비아 반정부 소요사태가 종국으로 치닫고 있다. 리비아 보안군의 유혈 강경진압으로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군과 정부 인사들의 정권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42년간 철권 통치해 온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마지막 날을 목전에 두는 듯한 상황이다.
미국 abc방송은 “카다피 정권의 무자비한 성향과 국제정세로 볼 때 이번 리비아 시위가 이집트와 튀니지와는 달리 극단적인 유혈사태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무력 진압으로 사상자 속출=‘반전쟁범죄국제연대(ICAWC)’는 최근 리비아 곳곳에서 이어진 소요사태로 519명이 사망하고, 3980명이 부상했으며, 실종자가 1500명에 달한다고 21일(현지시간) 밝혔다. 이슬람권 사이트인 온이슬람넷은 사망자수가 600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카다피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20일 밤 수도 트리폴리 도심에 있는 녹색광장 일대에 진출해 이튿날 새벽까지 무장한 친정부 세력의 강경진압 속에서도 시위를 벌였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목격자들은 무장한 아프리카 용병을 태운 헬리콥터가 착륙해 거리의 시민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하면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또 전투기가 시위대 상공에서 저공비행을 했고, 지붕 위에선 저격수가 움직이는 차량을 향해 총을 쏘는 등 시위진압이 극에 달했다.
CNN은 리비아 정부가 시위대에 발포를 거부한 군인 6명을 살해했고, 그들의 처참한 모습이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으로 유포되고 있다고 밝혔다.
◇시위대 주요 거점 장악, 군·정부 인사 이탈=시위대가 제2의 도시 벵가지를 비롯해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 미스라타, 알자위야 등 8∼9개 도시를 장악했다고 AP가 보도했다. 군부와 상당수 정부 인사들도 카다피에 등을 돌리고 있어 카다피의 장악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유엔본부와 미국·인도 등지에 주재하는 리비아 대사와 외교관들도 반정부 시위 유혈진압에 나선 카다피에 잇따라 반기를 들고 나섰다.
미국 주재 리비아 대사인 알리 아드잘리는 21일 영국 BBC방송에 “리비아 상공에 뜬 전투기가 시위대에 발포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국 정부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주재 대사관은 22일 성명을 내고 카다피 정권의 시위대 진압을 강력 규탄했다.
리비아 전투기 2대가 21일 지중해의 섬 국가 몰타에 비상착륙했으며 조종사 4명은 군부의 진압 명령에 불응한 채 몰타에 망명을 신청했다.
◇외국인 탈출 러시=리비아의 시위사태가 내전 상황으로 번지자 석유업체 근로자를 비롯한 외국인들의 탈출 행렬도 이어졌다. 미국·독일·터키·태국 등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리비아에서 폭력 사태와 약탈이 횡행하자 자국민과 직원 철수에 나섰다.
최대 해외 에너지 생산업체인 이탈리아의 에니(ENI)가 필수요원만 남기고 직원과 가족을 해외로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