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박병광] 중국에 부는 재스민 혁명의 바람
입력 2011-02-22 18:04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의 거센 바람이 중국 대륙에까지 휘몰아치고 있다. 최근 중국 내에서는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을 지지하는 글들이 인터넷상에 등장하더니 마침내 지난 일요일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기습시위가 벌어졌다. 중국 인민들이 길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치며 시위를 벌인 것은 1989년 ‘6·4 천안문 사건’ 이후 22년 만이다.
이번 시위에서 주목되는 것은 ‘일당 독재를 끝내자’는 정치구호가 직접적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천안문 사건 당시에 중국인들은 대부분 개혁개방정책의 부작용에 따른 ‘부정부패 척결’과 각 분야에서의 민주화를 요구했을 뿐 공산당 독재를 끝내자는 요구는 없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 역시 서구식 3권 분립과 다당제를 골자로 하는 정치개혁을 요구했으나 공산당 독재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중국인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다당제와 정치민주화를 요구하면서 공산당 독재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공산당독재 거부’ 구호 첫 등장
일반 대중들의 민주화 요구를 바라보는 중국 지도부의 속내는 두려운 기색이 역력하다. 후진타오 주석은 이미 사회 안전 관리를 명분으로 체제유지를 위한 강력한 조치들을 지시한 바 있다. 그 중에는 사회주의 사상도덕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인터넷 관리 강화, 보도 통제조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의 사이버 공간은 사회 불만을 표출하고 부패를 고발하는 등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주요 언로(言路)가 된 지 오래이다. 중국 지도부로서는 4억5000만명에 달하는 중국의 네티즌들이 단순한 사실 전달에서 벗어나 공산당 일당체제를 비판하는 창구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심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중국 지도부는 나름대로 정치개혁과 당내민주화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이는 정치사회적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이었으며 공산당의 영구집권이라는 철칙에 변화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유선거를 통한 지도자 선출 역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촌장과 촌서기를 직접 선거로 뽑고 있으며 일부 실험지역에서는 향(鄕)·진(鎭)의 경우 당 서기를 직접 선거로 뽑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의 기본 척도라 할 수 있는 대중의 직접 참여에 의한 지도자 선출, 다당제에 따른 정권의 수평 이동 등은 원칙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중국의 민주화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다양한 논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오늘날 중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끈 원동력은 중국공산당이며 민주선거와 다당제를 실시할 경우 민족갈등을 부추겨 중국의 미래는 파멸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중국식 모델’은 비효율성 투성이며 관료라는 늑대무리를 키웠을 뿐이고 민주주의에는 서구식과 중국식이 따로 있을 수 없다며 민주화를 옹호하고 있다. 민주화 방향을 둘러싼 사상투쟁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급변 있을 수도
근대 이후 인류 역사의 흐름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그 누구도 민주화의 도도한 물결을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도 정치적 민주화가 지연되면서 권력으로부터의 소외, 사회 불평등의 심화 같은 문제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에만 10만 건이 넘는 집단소요가 발생했다. 모순은 점증하고 항거는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정부는 기층 수준의 제한된 민주화만을 통해 대중들의 불만을 무마하고 공산당 지배체제를 영원히 지속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재스민 혁명의 바람이 중국 대륙에까지 이른 것을 보면 언젠가는 ‘죽의 장막’에도 민주화의 훈풍이 ‘틈새’를 파고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순간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중국의 예상치 못한 변화 역시 우리가 주시하고 대비해야 할 사안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硏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