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선구자’ 노르웨이, “할당제만으론 한계… 가족문화 달라져야”
입력 2011-02-22 17:54
노르웨이는 2003년 유럽 국가들 중 가장 먼저 ‘공기업 및 민간기업 이사 여성 40% 할당제’를 법으로 도입했다. 당시 여성 인력의 80%가 가사 이외의 바깥일을 갖고 있는 ‘양성평등 국가’로 평가받고 있어서 노르웨이 사회는 이 조치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노르웨이 기업들은 반발했다. 하지만 정부는 “자율에 맡기면 민간기업에서 40% 목표를 채우는 데 수십 년도 더 걸릴 것”이라며 강행했다. 다만 2005년까지 목표를 채우게 했고, 어길 경우 기업해산 등 징벌적 제재를 가능케 했다.
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노르웨이 여성할당제는 유럽 전역에 벤치마킹 붐을 일으키고 있다. ‘연어, 원유에 이어 여성권익까지 수출한다’는 노르웨이에서 여성할당제는 얼마나 성과를 내고 있을까. 유럽전문직여성네트워크(EPWN)에 따르면 2002년까지 5%에도 못 미쳤던 여성임원 비율이 2008년에 목표치(40%)를 넘어 44%를 기록했다. 지난해 37.9%로 다소 낮아졌지만, 유럽 내 2위인 스웨덴(28.2%)에 크게 앞선다.
엘리 사터스맨(46·여)은 이 정책의 수혜 1세대다. 그는 국영에너지기업 스타트오일의 이사진 12명 중 1명이고, 또 민간경영관리기업 스캔드파워의 이사회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최근 독일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성공적인 이사회 운영 노하우’ 강연을 할 예정”이라며 “몇 년 전이었다면 여자가 이런 강연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 제도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고위직에 오르는 새로운 커리어우먼 롤모델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국가 후원의 과도한 페미니즘 성향의 증거라는 비판도 있다. ‘골든 스커트’라는 비아냥 섞인 신조어도 생겨났다. 수치상의 여성 임원 증가를 질적으로 받쳐주지 못한다는 혹평도 있다. 사외이사 등에선 여성의 등용이 늘었지만 경영을 책임지는 고위직엔 남성이 아직도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CEO직에는 여성들이 여전히 기피되고 있다.
노르웨이기업연맹(NHO)의 크리스틴 스코겐 룬드(44) 회장은 “명실상부하게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선 할당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가족문화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가사와 육아 부담을 주로 지다보니 경력 관리에서 뒤지게 된다는 것이다.
룬드 회장은 대책으로 200개 회원기업들에 ‘3분의 1 룰’을 제안하고 있다. 육아휴직기간 3분의 1은 아내가, 3분의 1은 남편이, 3분의 1은 여건이 되는 누군가가 부담하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을 그런 방법을 쓴 성공사례라고 소개했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