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생태계 파수꾼들… “작고 앞 못 봐도 우리 없으면 지하수 엉망될 걸요”
입력 2011-02-22 17:35
암흑세계인 지하 공간을 흐르는 지하수에도 생명이 존재한다.
‘지하수’하면 플라스틱 병에 담겨진 먹는 샘물과 모터 펌프를 떠올린다면 지하수에 생물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우린 지하수에 산다= 지하수는 지구 생태계의 에너지원인 태양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땅속 깊은 곳에 존재한다. 빛이 없기 때문에 광합성을 담당할 식물도 살 수 없다. 지상 생태계에서 생산자 역할을 맡는 식물 없이 먹이 피라미드를 이루는 곳이 바로 지하수 생태계다.
지하수 생태계 먹이사슬의 밑바닥엔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물에 함유된 영양분을 먹고 철 또는 망간 성분이 함유된 배설물을 내놓는다. 박테리아 또는 그 배설물을 먹고사는 작은 지하수 생물들이 있다. 작은 생물들은 큰 생물의 먹이가 된다. 지하수 생태계가 없다면 지하 공간은 박테리아가 내놓는 금속성 물질로 꽉 막히게 될 것이다.
지하수에 사는 생물은 모두 시각이 퇴화했다. 빛이 없는 세상이어서 보이지도 않고 볼 일도 없기 때문이다. 먹이 공급원이 한정돼 있어 먹는 양도 적고 신진대사가 느리다. 색소가 없어 몸통은 온통 투명하다. 검은색 사진은 보통 흑백 전자 현미경으로 촬영한 것이고, 색깔이 들어가 있다면 염색처리한 것이 대부분이다. 가장 큰 지하수 생물의 몸길이가 5㎜ 미만일 정도로 작다. 성장 기간이 길고 번식률은 낮다.
하지만 매우 작은 지렁이 모양의 지하수 생물들은 토양 입자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수많은 틈새를 만든다. 지표수와 지하수가 순환하는 통로를 만들고 용존산소량을 늘리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수계마다 종류 달라=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연구원은 2005년 국가지하수 관측망 200여곳을 조사했다. 그 결과 조사 지점의 50.64%에서 동물이 발견됐다. 모두 2393마리로 19개 분류군에 속했다. 암반 대수층에선 평균 3.57마리가 발견됐고 그보다 얕은 충적 대수층에선 6.88마리가 관찰됐다. 깊이가 깊어질수록 용존 산소량과 영양분이 줄어들기 때문에 생물이 살기 어려워진다는 설명이다.
4대 권역별로는 금강 권역이 평균 9.41마리로 가장 많은 동물이 발견됐고, 한강 권역(6.94마리), 영산강 권역(3.14마리), 낙동강 권역(2.76마리) 순이었다.
낙동강 권역에선 160개 시료를 채취했는데, 58개를 채취한 금강 권역보다 동물이 적게 발견됐다. 연구진은 낙동강과 영산강 권역이 다른 권역보다 오염 정도가 심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했다. 경상도 지역의 심층지하수는 용존산소가 많은 호기성 환경을 나타냈지만 전라도 지역은 용존산소가 부족한 혐기성 환경으로 파악됐다. 지질학적 구성과 주변 토지이용, 오염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됐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종류별로는 절지동물문 검물벼룩목(cyclopoida)이 전체의 41.4%로 다른 분류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음으로는 편형동물문 와충강(turbellaria) 10.8%, 절지동물문 고하목(bathynellacea) 9.1%, 절지동물문 갈고리노벌레목 (harpacticoida) 6.4%, 환형동물문 빈모강(oligochaeta) 5.0% 순이었다.
지하수 생태계의 구성원은 크게 3가지 종류로 나뉜다. 뜨내기 부류(stygoxenes)는 우연히 지하수에 들어온 생물이다. 막음조치를 하지 않은 지하수 관정에 떨어졌거나 한꺼번에 지표수가 쏟아질 때 섞여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손님 부류(stygophiles)는 일생에 한 번은 지하수를 거치는 종이다. 등딱지하루살이 등 유충 기간을 지하수에서 보내다가 성충이 되면 지상으로 돌아가는 종류가 여기에 속한다. 정주 지하수 생물(stygobites)은 일생 동안 지하수에서 살아가는 부류다. 동굴과 지하수에서 모두 발견되는 종과 동굴에서는 살지 않는 종으로 구분된다. 옛새우류가 대표적이다.
◇역사는 짧지만 성과는 톡톡=지하수 생태계 연구 역사는 선진국에선 15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국내 연구는 2000년대 들어서야 시작됐을 정도로 미개척 분야로 남아있다. 국내 연구자로는 국립생물자원관 조주래 무척추동물과장을 포함해 손에 꼽힐 정도다. 출발은 늦었지만 성과는 선진국 못지않다. 조 과장은 세계적으로 250종 정도 발견된 옛새우 가운데 50여종을 처음 발견해 이름을 붙였다. 조 과장은 “지하수는 중요한 수자원이며 많은 생물의 서식지”라며 “지표수와 지하수의 수질과 수량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하수 생태계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 및 이를 위한 연구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