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영성의 길
입력 2011-02-22 17:55
(32) 영적 형성을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다. 또 닮아야 하고 닮게 되어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생명 때문이다. 베드로후서 1장 3절 말씀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생명은 우리가 창조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친히 주신 것이다.
경건도 우리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생명이 영성의 신적 본질이라면 경건은 영성 형성을 위한 인간의 노력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하나님이 주셨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고 경건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영성 형성은 하나님의 주도적 은혜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후서 1장 5∼7절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경건에 우리가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믿음에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우애와 사랑을 더하는 것이다. ‘더한다’는 말이 중요하다. 이 말은 분명 ‘창조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덕과 지식을 창조할 수 없다. 이 말은 ‘후원한다(에피코레게사테)’는 뜻에 가깝다. 하늘의 생명을 공급받아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후원하는 것이다.
영적 형성은 이로써 우리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참여한다’는 말도 중요하다. 신의 성품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보배롭고 큰 약속이다. 영성 형성을 위해 우리가 몇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일을 이루셨으니 나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나는 벌레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죄악의 상태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벼락을 쳐서 모든 일을 잘 되게 할 것이라고 믿지도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노력하면 얼마든지 죄 없는 완전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과신하지도 말아야 한다. 죄지을 틈도 없이 바쁘게 하나님을 위해 일하다 보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거룩하게 될 것이라고도 믿지 말아야 한다.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에게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을 공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과 그 은혜에 최선을 다하여 응답하는 것이다. 영적 형성은 이 둘의 균형 속에 이루어진다. 이 균형이 깨지면 한쪽은 신비주의로 가고 다른 쪽은 인본주의로 간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말한 것이 좋은 결론이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수고를 낳고, 우리의 수고는 하나님의 은혜를 초청한다. 영성 형성으로 가는 길에는 고난도 있고 죽음도 있다. 그러나 고난도 죽음도 크게 보면 그리스도를 닮는 과정이다. 고난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닮고 죽음은 천국에서 주님을 닮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은혜 안에 있다.
이윤재 한신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