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高 ‘전학 러시’… 뭔가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학비만 비싸고 내신 불이익
입력 2011-02-21 22:00
자율형사립고(자율고) 출범 첫 해인 지난해 서울 지역 자율고 입학생 4700여명 중 300명이 넘는 학생이 전학을 가거나 학교를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김춘진(민주당) 의원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관련 자료에 따르면 시내 자율고 13곳의 2010학년도 신입생 4779명 중 중도이탈한 학생은 338명(7.0%)에 달했다. 이 중 다른 학교로 전학 간 학생은 278명(82.2%)이었으며 자퇴 등의 사유로 학교를 떠난 학생은 60명(17.8%)이었다.
지난해 서울 지역 고교생 중 학교를 옮긴 비율이 1.4% 수준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자율고 학생의 전학률(5.8%)이 4배 이상 높았던 셈이다. 특히 신일고와 한가람고, 중앙고의 경우 중도이탈률이 10%가 넘었다. 신일고는 입학생 387명 중 무려 47명(12.1%)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 같은 현상은 예고된 결과라는 것이 교육계의 평가다. 자율고에 입학하면 일반계고 3배 수준에 달하는 학비를 부담해야 하고 내신에서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 교육의 질은 일반계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서울 지역 한 자율고에 다니다 일반계고로 전학 간 김모(17)군은 “거리가 멀어도 일반계고보다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율고에 들어갔지만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자율고 이탈 현상’이 앞으로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2011학년도 신입생 모집에서 자율고가 무더기 미달 사태를 겪자 충원율이 미비한 학교에 워크아웃 제도를 도입하는 ‘자율형 사립고 운영 내실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달 학교’라는 낙인이 찍히고, 나아가 자율고 지정까지 취소되면 학생들의 대규모 ‘전학 러시’가 있을 수 있다.
자율고 교사들의 전망도 비관적이다. 교사 A씨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율고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이 모이는 만큼 학창시절 인맥 쌓기에 용이하다는 점을 빼면 매력을 느낄 부분이 없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B씨는 “앞으로도 미달 사태가 계속되고 전학생도 늘면 교사 구조조정 등의 문제도 거론될 수 있어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교육당국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율고 정책이 교육현장에 입시교육만 강화시킨다는 비판도 거세다. 본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를 통해 자율고 교사 35명을 상대로 서면 인터뷰한 결과 30명(85.7%)이 자율고 전환 이후 ‘국영수 위주의 입시교육이 심해졌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자율고 정책 성공을 위해 ‘학생 선발권 보장’(16명), ‘자율고 수 축소’(11명), ‘자율적인 교육과정 운영 보장’(4명), ‘학비 인하’(4명)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