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채 800조 육박… 생계형 빚 ‘위험수위’

입력 2011-02-21 18:43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대출규제 완화로 가계빚 증가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카드빚 등 가계 부채가 분기 기준 8년여 만에 최고치로 증가하며 총액이 800조원에 육박했다. 특히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의 생계형 빚이 급증해 가계부실 우려가 한층 높아졌다.

◇생계형 부채 급증=한국은행은 지난해 4분기 중 가계신용은 전분기보다 25조3000억원 증가했으며 부채 잔액은 795조4000억원에 이른다고 21일 밝혔다. 지난해 4분기 가계신용 증가분은 2002년 3분기(26조8000억원) 이후 최대치였다. 가계신용이란 금융권에서 받는 대출과 신용카드 등에 의한 외상구매를 뜻하는 판매신용을 합친 것으로 ‘가계가 지고 있는 빚’에 가장 근접한 개념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서민들의 생계형 부채가 급증한 점이다. 마이너스통장 대출이 주를 이루고 있는 기타대출의 경우 예금은행에서는 지난해 4분기 2조5110억원이 늘었다. 전분기(9850억원)보다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저축은행과 신용협동기관 등 저신용 서민들이 이용하는 제2 금융권에서 대출은 더욱 심각하다. 제2 금융권 기타대출은 지난해 4분기 5조8700억원이 늘어 통계가 작성된 2008년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신용카드와 관련한 빚은 카드대란이 일어났던 2002년 수준에 육박하는 등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신용카드에 의한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의 경우 지난해 25조4000억원을 기록하면서 전년도보다 4조4000억원이 증가했다. 카드대란이 절정에 이르렀던 2002년(8조6000억원 증가) 이후 최대였다. 신용카드 등에 의한 외상구매를 뜻하는 판매신용 역시 2010년에 무려 7조7000억원 늘어나 2002년(9조7870억원)에 버금갔다.

금융권 관계자는 “카드론과 마이너스 대출 등은 저신용자들이 손쉽게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인데 이들 부채가 급증하면 금리 상승 등 외부 충격이 올 때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완화 피해야=예금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 4분기에 전분기보다 7조7170억원이 급증했다. 분기별로 부동산가격 급등세가 한창인 2006년 4분기(10조1000억원) 이후 가장 높아졌다.

하지만 금리상승기에 주택 관련 대출의 급증은 가계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은의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금리가 0.1% 포인트 상승하면 2억원 초과 대출자의 경우 이자지급비율이 3.9% 포인트 올라간다”며 “소득 수준이 낮은 차입자들의 충격이 훨씬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최근 정부 일각에서 나오는 DTI 규제완화 기간 연장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DTI가 대출 수요를 규제하기보다 대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차원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당초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6개월 한시적으로 도입한 DTI규제 완화책은 다음 달 말 만료된다. 한국개발연구원 허석균 연구위원은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DTI 완화기간을 다시 연장할 경우 부동산 거래 활성화보다 거품을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석태 SC제일은행 상무는 “고통스럽긴 해도 금리를 올리고, 대출을 원금 상환으로 유도해야 부채대란을 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