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창구 단일화 바람직하다” ILO, 산학협동조사단에 밝혀

입력 2011-02-21 23:19

국제노동기구(ILO)를 비롯한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한국이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된 상황에서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는 것이 ILO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카렌 커티스 ILO 국제노동기준국 부국장은 최근 우리나라의 복수노조 해외실태 산학협동조사단을 만나 “(각 노조와의) 개별교섭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교섭창구 단일화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동석한 수잔 헤이터 ILO 연구·정책개발 전문가는 “1990년대 영국의 경우처럼 창구 단일화가 교섭의 효율화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과 노조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노동 관련 학자들과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로 구성된 복수노조 해외실태 산학협동조사단은 오는 7월 1일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을 앞두고 지난 14일과 17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ILO 본부와 프랑스 파리에 있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사무국을 각각 방문했다.

ILO와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TUAC) 관계자들의 입장을 종합하면 “법으로 대표노조에 배타적 교섭권을 부여하는 것도 소수노조의 의견을 반영하는 민주적 절차를 갖추고 있는 한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의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은 소수노조의 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것”이라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노조법 전면 재개정을 위한 4월 춘투를 예고했다.

민주노총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조치가 ILO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을 위반했다는 관련 진정에 대해 추가 정보를 지난달 11일 제출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0월 가진 기자회견에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한 국내법이 소수노조의 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제약한다고 말했다.

현행 국내법은 단체협약 만료를 앞두고 교섭참여를 신청한 참여노조를 확정한 후 14일간의 자율적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조 간 자율적으로 단일화를 이루든지, 조합원의 과반수를 점하는 노조가 교섭대표노조 자격을 얻는다. 단일화에 실패하고 과반수 노조도 없는 경우 노조 측 신청에 따라 노동위원회가 공동교섭대표단 구성을 결정한다.

유럽연합(EU) 각국은 교섭대표를 정하는 방식에 대한 법적 규제를 인정하는 추세다. 프랑스는 2008년 개정한 노동법에서 기존 전국 단위 노조 5개가 산하 사업장에 난립시킨 소수노조의 교섭대표권을 사실상 박탈했다. 전체 종업원 10%의 지지를 얻어야 교섭대표로 인정받는 내용의 법 개정안에 전국 단위 상위 규모 노조 2개가 동의했기 때문이다.

아넬로어 쿠리 프랑스 노동·사회관계부 노사정책부국장은 “조직률 하락에 직면한 노조가 노조 간 경쟁을 받아들인 측면이 크다”면서 “노조의 대표성 강화로 노동운동의 힘이 커지고 사용자 입장에서도 교섭이 효율화되는 이득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과전문대학원 이철수 교수는 21일 “교섭대표를 정하는 방식에 대한 법적 규제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철 지난 의제가 됐다”고 말했다.

교섭단위의 분권화, 노조 간 경쟁이 세계적 추세라는 것이다. 물론 민주적 절차와 소수 노조의 대표권이 무시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커티스 부국장은 “교섭대표 노조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단체행동 결정 과정에서 소수노조의 참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네바, 파리=임항 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