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9) ‘연탄은행’ 설립 주역 함종성씨

입력 2011-02-21 21:51


“자장면 한 그릇 값으로 연탄 10장 나누자 결심했죠”

그는 사업체 3개를 운영한다. 둘은 운송 관련 기업이고 하나는 건설업체다. 운송 관련 기업이 주력이다. 특수화물자동차로 자동차 등을 주로 운송한다. 대형 차량을 움직이는 일을 하다보니 예기치 않은 사고가 가끔 일어난다. 직원들이 사고를 내는 경우도 있고, 다른 차량 과실로 직원이 다치는 경우도 있다. 그때마다 그는 자괴감에 빠진다. ‘내가 하는 일, 나의 직업 때문에 누군가 크게 다치고 불행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이웃에게 시선을 돌리고, 자그마한 것이라도 남을 위해 내놓게 된 데에는 이런 고민들이 영향을 미쳤을 게다.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기덕상사 등 3개 업체 대표인 함종성(59)씨. 그는 강원도 원주에서 무료급식 활동을 하는 ‘밥상공동체’의 오랜 후원자다. 후원이 필요할 때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마다 그는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밥상공동체가 매년 8월 15일을 ‘빈곤 해방의 날’로 정해 홀몸 어르신이나 생활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삼계탕을 대접하고, 쌀을 나누는 활동에 꼬박꼬박 참가했다. 2000년대 초 삼계탕 200여 그릇으로 시작한 이 행사는 지난해 삼계탕 1500그릇으로 규모가 커졌다.

2002년 늦가을 어느 날, 그는 밥상공동체 대표인 허기복(55) 목사에게 “어려운 이웃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연탄을 나누자. 연탄 비용은 내가 후원하겠다”고 제안했다. 어릴 때부터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생활에 익숙했던 그는 기름이나 가스는커녕 당시 1장당 250원에 불과한 연탄조차 제대로 쓸 수 없는 어려운 이웃들을 보면서 ‘자장면 한 그릇 값(2500원)이면 이웃이 며칠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의 제안에 허 목사는 망설였다고 한다. ‘밥상공동체를 운영하며 무료급식 하는 일만도 벅찬데 연탄 나누기 운동까지 할 수 있을까. 후원이 계속 지속될 수 있을까.’

하지만 허 목사는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무료급식을 하면서 연탄 땔 형편이 되지 않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던 기억을 되살렸다. ‘후원자까지 나섰는데 내가 바쁘다고 이 일을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해 12월 17일 마침내 첫 연탄은행이 원주에 문을 열었다. 현재 전국 31개 지역에 33개가 운영되고 있는 연탄은행의 시작이었다.

연탄은행 설립을 앞두고 함 대표는 약속대로 밥상공동체 옆 가건물에 연탄 1000장을 채웠다. 건강이 허락하는 이들은 언제든 이곳에서 연탄을 직접 갖고 갈 수 있도록 했다. 운신이 어려운 어르신들은 봉사자들이 직접 배달했다. 함 대표와 허 목사는 연탄 나누기의 명칭을 고민 끝에 ‘연탄은행’으로 결정했다. 후원자로부터 기부 받아 매입한 연탄을 쌓아두되 필요한 이가 언제든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돈을 예치해 놓고 언제든 찾아 쓰는 은행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함 대표는 “이웃의 겨울나기를 돕자는 마음과 함께, 소액도 기부할 수 있는 만큼 이를 통해 기부문화가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함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연탄 창고가 빌 때마다 연탄을 채워 놓겠다”고 했던 함 대표가 연탄 창고를 채우는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 1000원, 1만원 등 일반인들의 소액 기부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500원을 내놓거나 100원을 계좌 이체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사람이 내놓는 금액은 적었지만 그렇게 모인 돈은 연탄 창고를 채우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지역 학교에는 100원짜리 동전 100개 정도를 넣을 수 있는 ‘연탄 저금통’이 나눠졌고 한 중학교에서는 연말 저금통을 통해 모금한 100만원을 연탄은행에 기부했다.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떡볶이 먹을 돈을 아껴서 모은 것이었다.

한 어머니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 아기 돌잔치를 치를 형편이 되지 않자 아기 이름으로 5만원을 보내 왔다. 아기에게 잔칫상을 차려주는 대신에 뜻있는 일을 하는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였다. 이 어머니는 이후 정기 후원자가 됐다.

함 대표는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기부문화 확산의 희망을 본다”며 “자신이 낸 돈이 적절히 사용되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보람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기부문화는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연탄은행의 활동이 외부에 알려지자 다른 지역에서도 연탄은행을 설립해 달라는 요청이 잇따랐다. 이에 따라 춘천, 금산 등에도 잇따라 연탄은행이 세워졌고 2004년 11월엔 서울 중계본동에도 설립됐다. 연탄은행은 전국으로 확대됐고 이를 통해 지난해엔 전국적으로 총 2000만장의 연탄이 이웃에게 배달됐다. 기업들이 연탄을 대량 기부하고, 연탄 배달 봉사에 나서는 사회공헌활동이 대거 확산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함 대표의 연탄 1000장 기부가 채 10년이 되지 않아 수많은 이들의 후원을 이끌어내며 2만배로 불어난 셈이다.

연탄은행은 이제 그의 손을 떠났다. 500∼1000원, 1만∼2만원을 내는 소액 기부자들의 힘으로 연탄은행의 기반은 탄탄해졌다. 함 대표는 “지역사회를 위해 여러 일을 해 왔지만 나의 제안에서 시작된 연탄은행이 전국으로, 수많은 기부자가 참여하는 활동으로 확산된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사교육 혜택을 받기 힘든 지역 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운영되는 유명 학원을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점수 1∼2점을 더 따기 위한 교육보다 인성 교육을 더 강화하는 것이 맞지만 사교육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학생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그의 확신이다.

그는 ‘무료 유명 학원’ 아이디어를 사범대학에 다니는 딸에게서 얻었다. 그의 딸은 학교가 있는 지역의 공부방에서 아이들의 학습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느라 방학이 되어도 집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현직에서 은퇴한 교사나 뜻을 같이하는 강사들에게 주중에 거처할 곳을 마련해 주고 일정 급여를 제공한다면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도 ‘무료 학원’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이유다.

함 대표는 “검토해야 할 문제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꼭 해 보고 싶은 일”이라며 “앞으로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 낙후된 지역사회의 중요한 공동체 운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주=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