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대홍수 7개월, 피해지역은 지금… 식량·담요 전하자 “하늘이 내린 선물” 환호
입력 2011-02-21 18:13
갯벌 같았다. 검은 침적토가 물결처럼 쌓여 있었다. 지난해 7월 말 사상 최악의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파키스탄. 비는 그쳤지만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이 인더스강으로 유입되면서 국토의 5분의 1이 잠겼다. 홍수 피해는 파키스탄 신드주 라카나 지역도 비껴가지 못했다. 남부 최대 도시 카라치에서 북쪽으로 600㎞ 떨어진 이곳은 도로 피해 복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곳곳에 캠프촌이 즐비했다. 파키스탄 홍수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16일 밤 라카나 인근 나시라바드 소재 고먼 디그리 칼리지. 학교 운동장에는 1000여명의 난민들이 192개의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국제구호단체 게인(GAiN)코리아(대표 최호영) 구호팀이 도착하자 난민촌에 활기가 넘쳤다.
캠프 책임자 나시르 알리씨는 최호영(55) 대표를 보자 “오전부터 기다렸다”며 반갑게 악수했다. 게인코리아는 이날 2000루피(한화 2만6000원) 상당의 식품과 담요 등을 192개 텐트에 공급했다. 식량은 쌀과 밀, 분유, 차, 설탕, 콩기름 등 10여 가지로 한 가족이 2주간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식량 박스와 담요를 받은 울람 헤드(35)씨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너무 좋다”며 “외부로부터 식량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알리씨에 따르면 이 지역 난민들은 대부분 잡초를 뜯어 먹으며 생활했다. 농사를 짓는 이들은 가옥과 농토가 물에 잠겨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캠프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막노동을 했고 여성들은 삯바느질 등을 통해 하루하루 살았다. 난민들은 가려움증 등 피부병을 호소했고 밤에는 추위에 떨었다. 연료가 없어 가축의 분뇨를 말려 사용했다. 홍수 7개월이 지났건만 여전히 긴급구호 현장을 방불케 했다.
알리씨는 “유엔 기구들과 서방 비정부기구(NGO), 파키스탄 정부 등이 구호활동을 했지만 주로 텐트 등 장비가 많았다”며 “이후 NGO 구호 손길이 끊겨 영양이 부족한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 아비드 후세인(27)씨는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5개월 만의 귀향이라 했다. 그는 “여기 있어도 좋지만 돌아가는 게 더 낫다”며 “살길은 막막하지만 내 땅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나시라바드 지역은 홍수 이후 파키스탄대학생선교회(PCCC·아시드 카말 대표)와 지역 기독교인 등이 구호활동 중 찾아낸 지역이다. 특히 이 지역 출신으로 10년 전 기독교로 개종한 하산(29)씨의 노력으로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최 대표는 “아직까지도 긴급구호를 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며 “이재민들이 농민인 것을 감안해 향후 씨앗 등을 지원해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17일 오전엔 나시라바드에서 10㎞ 떨어진 또 다른 피해 지역을 찾았다. 마을 두 개를 지나자 캠프촌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 일엽편주(一葉片舟) 같았다. 모스크와 학교, 반파된 집 한 채 외에는 100여 채의 집들이 모두 떠내려갔거나 주저앉았다.
주민 아지칸씨는 구호팀이 도착하자 “몇 달간 닭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 우리에게 고기를 달라”고 소리쳤다. 마흔 살이라고 나이를 밝혔지만 겉으로는 60세가 훨씬 넘은 노인처럼 보였다. 닭고기와 양고기가 주식(主食)인 파키스탄에서 수개월간 고기를 못 먹었다는 것은 심각한 결핍을 반영하는 것이다. 먹을 물도 없어 3㎞ 이상 떨어진 마을까지 걸어가 물을 길어왔다.
최 대표는 “수몰 지역 주민들을 이대로 방치하면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다”며 “국제 사회와 한국교회는 잊혀진 이 땅을 위해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게인코리아는 지난해 9월부터 파키스탄 홍수 피해 이재민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해 그동안 4만7000달러(5100만원)의 성금을 지원했다. 컨테이너 8개 분량의 구호품을 파키스탄 북서부 카르사다 지역 등으로 보내 이재민 850가정에 전달한 바 있다.
라카나= 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