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의 노래 모임 ‘그루터기’ 10년째 자선공연… 소아 신장병 환자들 돕는다

입력 2011-02-20 19:24


아무런 증상 없이 갑자기 발병하는 ‘소아 신장병’.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를 받지 못해 만성 신부전으로 진행되면 신장 이식 외에 달리 치료법이 없다. 하지만 초기 신장병의 경우 겉으론 건강한 사람과 다르지 않아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은 제대로 된 치료는 물론 사회적 지원도 전혀 못 받고 있다.

이 같은 소아 신장병 환자를 돕기 위해 10년째 거리·실내 공연을 꾸려오며 아이들의 가슴에 희망의 촛불을 켜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평범한 직장인의 노래 모임 ‘그루터기’ 회원들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해 주는 것이 바로 그루터기가 존재해야 할 이유입니다.”

19일 저녁 서울 숙명아트센터 씨어트S에서 만난 그루터기의 회장 김태성(41·한의사)씨는 지난 10년 동안 변함없이 소아 신장병 아이들 곁을 지켜온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루터기 회원 15명은 이날 올해 첫 실내 공연을 열었다. 추운 날씨에도 250여명의 관객은 아마추어 노래패의 음악을 들으며 박수치고 흥겨워했다.

공연 주제는 ‘뽈레뽈레’로 ‘괜찮아 늦지 않았어. 서두르지 않아도 돼’라는 뜻의 아프리카 말이란다. 공연 연출을 맡은 구현주(31·회사원)씨는 “우리나라 말 ‘빨리빨리’와 같은 자음 구성을 가졌지만 뜻은 정반대”라면서 “한 박자 쉬어가며 자기 자신을, 그리고 이웃을 생각하자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2001년 9월 결성된 그루터기는 이듬해부터 인천 월미도 야외광장에서 주말마다 거리 공연, 1년에 한 차례 실내 공연을 해오고 있다. 회원들은 한의사, 치과의사, 물리치료사, 보험설계사, 공무원, 회사원 등 다양하지만 대부분 그저 노래가 좋아 뭉친 이들이다. 그루터기의 산파 역할을 한 김 회장은 “회원 대부분이 대학 때 사회 변혁을 외치던 노래패나 풍물패 출신이어서 노래를 통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 보자는 데 쉽게 의견이 모아졌다”고 했다.

“당시 경희대 한의대에 다녔는데, 병원 사회사업실을 통해 소아 신장병 환자들의 아픔을 듣고 그들을 돕기로 한 거죠.” 이렇게 시작된 공연은 지금까지 80여회, 모금액은 8000여만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7000여만원을 17명의 신장병 어린이의 치료비로 지원했다.

그루터기의 도움을 받은 ‘희망동이’들은 또 다른 베풂을 낳고 있다. 고2 때 만성 신부전증 치료를 받으며 그루터기와 인연을 가진 김한욱(27·공무원)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독학으로 기타를 공부해 이번 공연에 나선 것. 1주일에 3번 혈액 투석을 받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공연 연습을 빼먹지 않은 김씨는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내가 받은 만큼 또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2009년부터 치료비를 지원받고 있는 오유빈(20·대학생)씨는 키보드 연주자로 공연에 참여했다. 김 회장은 “그루터기는 앞으로도 밑둥이 짧지만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고, 새싹들이 자라나 움을 틔우는 공간으로 계속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