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CB…엇갈린 판결 왜? 판단대상 다른 탓

입력 2011-02-20 21:46

형사-민사재판 인정범위 다른 탓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사건의 배상 책임에 대한 대구지법 김천지원의 판단이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이 난 사건과 차이를 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지난 18일 제일모직 주주 3명이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사건에서 “이 회장은 제일모직에 13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06년 제일모직 주주 3명이 제기한 이 소송은 심리가 계속 지연되다 5년 만에 판단이 나왔다. 하지만 이 회장은 에버랜드 CB 저가 발행과 관련해 2009년 대법원에선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번 김천지원 판단은 대법원 판결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대법원의 당시 판결은 에버랜드의 CD 발행이 에버랜드에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취지였다. 기존 법인주주들이 CB 인수를 포기했고, 이에 따라 이 회장의 아들 재용씨 등에게 실권주가 넘어간 것이므로 에버랜드 이사인 이 회장이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게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김천지원 사건은 판단 대상이 다르다. 재판부는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모직은 당시 에버랜드 CB를 싸게 인수할 수 있었는데도 포기해 결과적으로 이익 창출의 기회를 잃었다고 봤다. 따라서 제일모직 이사이기도 한 이 회장은 회사에 그만큼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 법조계 인사는 20일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은 배임 혐의에 대한 입증 강도 및 인정 범위가 다르고, 김천지원 판결은 상급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파장 등을 섣불리 논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논란은 1996년 12월 재용씨 남매가 에버랜드 CB를 주당 7700원에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에버랜드는 당시 99억5459만원 상당의 CB를 발행했다. 이후 제일제당을 제외한 나머지 삼성그룹 계열사가 CB 인수를 포기하면서 재용씨 등이 이 물량을 배정받았다. 재용씨는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에버랜드의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확보했다. 이후 2000년 법학교수들이 불법 경영권 승계라며 이 회장 등을 고발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당시 핵심 쟁점은 이 회장이 에버랜드 CB를 싸게 발행한 것이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 행위에 해당하는가 여부였다. 하지만 2009년 5월 대법원은 에버랜드에 피해가 없었다며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이후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노석조 기자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