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식수 위협] 돼지 매몰 다음날 핏물 줄줄 “날 따뜻해지면 어떻게 하나”

입력 2011-02-20 18:44

20일 오후 경남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대리마을. 마을을 가로지르는 원지천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매몰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침출수가 새지 않도록 매몰지를 콘크리트로 에워싸는 공사였다.

이 마을에서는 돼지 5700마리를 매몰한 다음날인 지난달 27일부터 주 매몰지에서 핏물이 흘러나와 원지천에 유입되는 사고가 터졌다.

주민 이모(43)씨는 “지금도 마을 전체에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데 날이 따뜻해지면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돼지 핏물이 하천으로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지하수는 또 어떻게 믿고 마시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이씨의 걱정처럼 이 마을 주민들은 지하수를 유일한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침출수 유출에 따른 식수원 오염 우려는 이곳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충북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주민들은 “마을 주민의 95%가 지하수를 식수로 하고 있다”며 “군에서 공동자원화시설(분뇨처리장)을 설치하려던 곳에 돼지 1만3700마리를 매몰해 걱정이 태산”이라고 토로했다. 이 마을 매몰지는 계곡에 위치한 데다 토질이 모래로 돼 있어 침출수 유출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에 위치한 사리면 상리의 돼지 매몰지는 돼지가 부패하면서 흙이 함몰되고 있었다. 별도의 배출구도 설치돼 있지 않아 악취가 진동했다.

구제역 가축을 살처분해 매몰하는 작업이 마구잡이식으로 진행되면서 문제점이 수면 위로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봄철 해빙기가 다가오면서 매몰지가 붕괴돼 가축 사체가 외부에 노출되거나 침출수가 흘러나와 인근 농경지나 하천으로 유입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강원도 홍천군 남면 유치리는 거대한 가축 공동묘지로 변했다. 야산 인근 공터에 돼지 1만3400마리를 묻은 매몰지에서는 급하게 묻은 흔적이 역력했다. 흙이 다져지지 않아 거대한 모래사장을 연상케 했다. 시냇가 쪽 경사면에는 가림막 시설조차 없어 이미 토사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적은 양의 비라도 견뎌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구제역으로 5개교가 개학을 연기한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은 광덕계곡을 거쳐 북한강 수계인 춘천댐으로 유입되는 사창천이 흐르고 있어 곳곳에 상수원보호구역 푯말이 꽂혀 있었다. 침출수 유입을 우려한 탓인지 하천 인근에는 매립지가 없었으나 거리가 불과 400m가량 되는 곳도 눈에 띄었다.

지난달 돼지 7000마리를 살처분했다는 농장에는 주인도, 돼지도 없었다. 산 중턱을 깎아 만든 매몰지의 가스배출 파이프만 덩그러니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파른 경사 탓에 빗물차단 시설이 필요해 보였지만 찾을 수 없었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와 신평리의 돼지 매몰지 2곳은 가스 배출관을 통해 심한 악취가 새어나왔다. 다행히 침출수가 흘러나온 흔적은 없었지만 침출수 배출관이 따로 마련되지 않아 2차 피해가 우려됐다.

농장주는 “돼지가 썩기 시작하면서 매립 당시 뚫린 비닐 사이로 침출수가 새어나가는 것 같다”면서 “침출수가 땅속으로 스며든 뒤 서서히 포천천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천·김해·괴산·포천=정동원 이영재 이종구 김칠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