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56) 3D로 재현한 청동기 거푸집

입력 2011-02-20 17:30


1967년 10월 10일 개관한 숭실대 부설 한국기독교박물관은 녹인 구리를 부어 작은 칼을 만드는 틀인 세형동검거푸집(細形銅劍鎔范)과 가는 줄 톱니무늬가 새겨진 구리거울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등 국보급 청동기시대 유물을 다량 소장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을 설립한 이는 1954년 숭실대 개교와 함께 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매산(梅山) 김양선(1907∼70) 교수랍니다.

매산은 평안북도 의주에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김이련과 부모인 김관근·백관성은 1889년 압록강세례를 받은 초기의 기독교 성직자들로, 매산 역시 자연스럽게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지요. 일제강점기에 숭실전문학교와 평양신학교를 나온 그는 신사참배 거부와 독립운동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답니다.

이후 평북 곽산읍 장로교회 담임목사를 시작으로 교회활동과 교육사업을 하면서 한국교회사 연구에 몰두하던 중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문화재 수집에 나섰지요. 매산의 수집품 3000여점 가운데 청동기 유물은 100여점으로 대부분 초기철기 한국식 동검문화시기의 것이랍니다. 매산은 이를 모두 숭실대에 기증해 오늘의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있게 했지요.

이 가운데 다뉴세문경(국보 141호)은 크기가 지름 21.2㎝에 지나지 않지만 청동기시대 주조 기술의 정수가 집약된 것으로 해외 전시 때 빠질 수 없는 단골 문화재랍니다. 84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국미술 5000년’ 전에서 청동기 전문가라는 학예관이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것을 보고 주조 방법을 설명해보라고 했더니 우물쭈물 자리를 피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유물은 매산이 60년에 수집한 청동기 거푸집 8종 14점(국보 231호)입니다. 전남 영암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이들 거푸집은 한국 청동기 주조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박물관 측은 0.1㎜ 단위의 초정밀 3D 스캔 데이터를 활용해 이 거푸집의 실측도면을 처음으로 완성, 최근 발간한 자료집 ‘거푸집과 청동기’에 실었습니다.

이 자료집에 따르면 거푸집이 제작된 때는 주조 방법과 정밀도에서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답니다. 이 중 1기에 속하는 것은 모두 6점이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기원전 3세기 말∼2세기 초에 속하는 전남 화순 대곡리 유적이 있고, 2기에 속하는 나머지 거푸집 8점은 기원전 2세기 초반의 함평 초포리 유적에 해당된다는 겁니다.

또 3D 스캔 영상으로 가상 주조를 실시해 실제 생산된 청동기를 추적한 결과, 화순 백암리 출토 청동꺽창과 함평 초포리 출토 청동도끼가 이들 거푸집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됐답니다. 이런 성과를 통해 영산강 유역이 청동기 제작센터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니 매산의 우리 문화재에 대한 열정이 3D 기술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