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1-02-20 17:50
(34) 이런 사람, 조심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라! 참 단순한 말인데 뜻이 깊다. 마가복음을 읽어 내려가면서 이 부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두어 주간은 이 구절을 끌어안고 살았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의 마지막 부분에 우뚝 서 있는 봉우리 같은 말씀이다. 예수님의 길은 북쪽 갈릴리에서 시작해 남쪽 유다의 예루살렘에서 끝난다.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한 주간 정도가 예수님의 길 끝자락이다. 맨 끝은 십자가를 지시고 목숨을 바친 골고다 언덕이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면서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쉽게 말하면 비장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가르치신 것들을 온 몸과 온 삶으로 보여주셔야 했다. 하늘의 가르침을 땅에서 완전히 이루셔야 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입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분의 길 마지막에서 하늘이 땅으로, 하나님이 사람으로, 가르침이 실천으로, 앎이 삶으로 되도록 당신이 보여주셔야 했다.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내셔야 했다. 하늘 아버지의 이 뜻이 구체적인 사람살이의 현장에서 몸으로 이뤄지는 것을 온 세계에 알리고 역사 대대로 전해지게 하셔야 했다. 그런 시기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이다. 주님은 명백하게 말씀하신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 이 계명이 중심이요 기준이요 최고다. 앞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논할 때 여기에 대봐야 한다. 이걸 모르면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이걸 알면서도 짐짓 무시하면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가식이다. 대놓고 무시하면 종교 장사꾼이다.
두어 주간 이 명제를 안고 살았다. 어떤 때는 마음이 저려오는 듯했다. 오늘날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 명제와 참 많이도 멀어진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신학자 선배가 언젠가 이것과 연관해서 한 말이 생각났다. 자신이 신학을 공부하고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이 종종 무섭다는 것이다. 선배는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다. 마가복음 12장 39절이다.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서기관이면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요 또는 장로라고 할 수 있다. 신앙공동체의 지도자들이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이 높은 자리나 윗자리를 욕심내는 것이 흔했다. 그런 모습을 ‘그럴 수도 있지’ 생각들 했다. 선배는 한국교회가 거의 정확하게 이런 진창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목사와 장로들이 자리와 명예에 욕심을 부리는 것이 이미 도를 넘어섰다. 더 심각한 것은 교회의 성도들이 그런 현상을 어느 정도는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고쳐지지 않는다. “서기관들을 삼가라!” 가만히 생각하니 참 이상한 말이다. 비상사태에서 나올 말이다. 요즘 말로 하면 이런 말 아닌가. “목사와 장로들을 조심해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이 얼마나 귀한지, 장로님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여기 프랑크푸르트에서 내가 아는 독일 교회 목사님 몇 분과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가만히 생각하니 그리스도인의 자의식이 내 안에서 점점 더 자라고 있다. 내가 사는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누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나를 통해서 하늘 아버지의 뜻이 조금이라도 펼쳐지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