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수 선교사 “미션엔 늘 핍박·시험… 그 뒤엔 늘 성령의 역사”
입력 2011-02-20 18:54
“오늘 감옥에 들어갔던 형제들과 시간을 보내며 신앙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고향 마을에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잡혀서 고초를 당했던 형제들이지만 얼굴에는 조금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면 당연히 그런 핍박을 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 ‘성경에도 예수님을 비롯하여 모든 제자들이 핍박당하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 핍박이 없이 성도가 신앙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느냐’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참 부끄럽더군요.”
CCC 국제본부 개척선교팀 리더인 박태수(48·사진) 선교사가 최근 지인들에게 띄운 기도편지 내용이다. 동남아의 한 지역에서 개척선교를 시작하기 직전 일어났던 일을 소개한 것이다. 최근 라오스 개척선교 현장에서 만난 그는 “갈수록 개척선교에 시험이 많이 온다”고 했다. 그렇다고 힘들다거나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한번도 없다. 지금까지 개척선교 경험에 비춰 봤을 때 큰 방해와 시험 뒤엔 반드시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극심한 고난과 고통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의 기도편지가 항상 ‘할렐루야’로 끝을 맺는 이유다.
박 선교사는 ‘평생 복음의 막노동꾼으로 살자’는 고 김준곤 목사의 말씀에 순종해 1988년 한국CCC 간사가 됐다. 음악선교부, 대학사역부, 국제선교부, 기독교21세기운동본부를 거쳐 96년부터 CCC 국제본부 개척선교팀에서 사역하고 있다. 그의 수첩에는 개척해야 할 민족 리스트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그의 임무는 누구보다 먼저 미전도 종족에게 들어가 그 종족에 대한 기초정보를 파악하고, 현지인을 사귀어 친구나 동역자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와 연합으로 현지인 사역자를 도와 실제 개척선교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40개 나라에서 미전도 종족을 개척했다.
그 많은 나라들 중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은 그의 가슴속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의 전쟁 이후 기아와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견딜 수 없었다. 아프간에서도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눈 덮인 산악지역을 찾았다. 족장의 허락을 받아야만 선교가 가능했던 그곳에서 다행히 족장은 박 선교사를 친구로 받아줬다. 아프간 장기선교사로 작정했던 그는 그때부터 2개월에 한 번꼴로 그곳을 방문했다. 하지만 얼마 뒤 제동이 걸렸다. ‘장기선교사가 된다면 아프가니스탄은 좋지만 다른 수많은 나라들은 손해’라며 CCC 국제본부가 만류했던 것이다. 그는 결국 아프간 장기선교사의 뜻을 접어야 했다. 마지막 인사차 찾아뵌 족장은 그런 박 선교사를 꼭 안아주며 “이제 당신은 내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라고 말했다. 그때 이후 한번도 족장을 찾아뵙지 못했다는 박 선교사의 눈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사역 때문에 접어둬야 하는 인간적인 미안함과 그리움 때문인 듯했다.
그가 미안해하는 대상은 더 있다. 1년 중 3분의 1밖에 함께하지 못하는 미국 올랜도의 가족들이다. 선교 얘기 때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박 선교사도 가족 얘기에서는 힘이 빠진다. 그는 “가족들을 위해 선교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도와 안부 이메일을 보내는 것밖에 없다”며 “그래도 개척선교를 이해하고 중보해 주는 가족들이 가장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1년 중 나머지 3분의 2를 선교지와 비행기, 공항 등에서 보낸다. 나이 오십이 코앞이지만 그는 아직도 10년간은 더 개척선교를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신변의 안전, 가족, 미래까지도 주님께 맡기고 전인미답의 오지를 누비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프론티어(개척자)가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었다.
박 선교사는 “교회가 한 미전도 종족을 10년간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그럴 때 지상명령의 마지막 임무인 미전도 종족의 복음화는 가속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 세계 6500여 미전도 종족 중 3200여 종족의 정보를 보유한 CCC 국제본부 개척선교팀은 미전도 종족 선교에 참여할 교회를 기다리고 있다.
라오스=글·사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