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재희] 진주가 되는 소녀
입력 2011-02-20 17:56
며칠 전에 만난 소녀의 마음에는 외로움과 슬픔이 가득했다. 밝게 웃으며 천방지축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는 소녀가 애달팠다. 소녀는 친구들이 왕따를 시켜 힘들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그녀는 오래전부터 왕따가 될 소지를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돌보는 이 없는 가정에서 외롭게 움츠러든 소녀는 친구들 틈에 스스럼없이 끼어 놀 힘이 없어 보였다.
이 어린 소녀를 지켜주지 못하는 가정의 무관심이, 쉽게 어울릴 수 없는 소녀의 약한 자신감이, 함께 놀아주지 않는 친구들의 매정함이 안타까웠다. 삶에 지친 엄마는 이런 어린 딸의 아픔을 알고 있을까.
어떤 아이들에게 가정은 그다지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곳이다. 오히려 상처를 입고, 분노를 쌓고, 어그러진 자아와 편견을 만들어내는 고통의 본산지이기도 하다. 이것은 경제적 상황보다는 전반적인 가정의 분위기에 좌우되는 듯싶다. 어려워도 따뜻한 가정이 있고, 부유해도 냉랭한 가정이 있다는 뜻이다. 불행이 익숙한 가정에서 오랜 기간 성장하다 보면 삶이란 원래 이렇게 무겁고 슬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때로는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슬픈지, 아픈지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측은한 아이들도 있다.
소녀가 고통을 느끼고 상담실을 찾은 것은 다행이다. 소녀는 고통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 고통을 건강하게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사실 고통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치유의 길을 걸을지, 고통의 굴레에 깊이 빠져들지 결정되는 것 같다.
힘겹지만 고통을 인정하고 정면승부를 할지, 고통을 쾌락이나 사람, 일 등의 활동으로 피해 버릴지, 아니면 고통을 부인하고 감정이 통하지 않는 딱딱한 삶을 살아갈지를 선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이 선택에 따라 도착하는 길은 사뭇 다를 것이다. 어쩌면 삶은 각자 선택에 의한 결과이지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탓할 것은 아닌 듯하다.
소녀는 어리지만, 고통을 인정하고 대면할 용기가 있었나 보다. 소녀의 힘으로 부실한 가정을 일으켜 세우기는 어렵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자신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보호하는 법, 다른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 마음의 힘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 소녀의 가족도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을 감당하고, 서로 대화하고 보살피는 법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소녀가 가정에서, 학교에서 편안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소녀와 그녀의 가정이 고통스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건강한 사이클로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우리는 함께 작업할 것이다.
조개 속에 입은 상처를 감싸 안아 값진 진주가 만들어지듯, 소녀의 아픔도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값진 회복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통찰과 변화를 향한 몸부림, 크고 작은 회복의 과정을 걸어가며 소녀의 상처와 아픔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삶의 진주로 변해갈 것이다. 나는 진주가 되는 소녀를 기대하며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김재희 심리상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