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영범] 물가안정 복병은 임금

입력 2011-02-20 18:16


2008년 말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 위기로 위기관리에 급급하던 정부가 5%대의 성장과 3%대의 물가 관리를 통해 올해를 경제 정상화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지만 연초부터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신3고’ 현상이 나타나는 등 국내외에서 위험 요소들이 돌출하고 있다.

특히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리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 동향을 나타내는 대표지수인 로이터-제프리 CRB지수는 지난 11일 기준 337.78을 기록했다. 튀니지와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민주화 시위로 2008년 9월 30일 이래 최고치(지난 2일 343.80)를 보인 CRB지수가 330대를 지속적으로 넘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의 퇴진으로 이집트 사태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자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소폭 하락했으나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등의 영향으로 원자재 시장에 몰린 국제투기세력은 쉽사리 물러나지 않을 전망이다.

올 1월 중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4%로 2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돼 차이나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연초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했던 한국은행이 두 달 연속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지난 11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한 것에서 보듯이 77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부실화와 수출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금리인상을 통한 물가관리도 쉽지 않다.

기름값, 통신요금, 대학등록금 등 가계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민간요금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인하 유도 노력에도 민간부문의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식경제부 장관이 직접 기름값의 원가구조를 살펴보겠다고 할 정도로 인하 압력이 거세지만 정유업계는 기름값에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다고 항변하고 있다.

통신요금 인하를 위해 통신비인가제 등 통신요금 가격결정구조를 바꾸겠다고 정부가 엄포를 놓고 있으나 설혹 통신업계가 요금을 인하해도 스마트폰 등 새로운 제품이 계속적으로 시장에 출하되는 상황에서는 가계의 통신비 부담이 크게 줄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 등록금을 3% 이상 인상하는 대학에는 정부의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3% 이상 등록금을 인상한 4년제 사립대는 26개(지난 8일 현재)로 평균 3.5%를 올렸다. 많은 대학이 등록금 수입에 재정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2년 내지 3년 연속 등록금을 동결하기란 쉽지 않다. 교과부가 정부 권고보다 등록금을 더 인상한 대학에는 특별감사라도 해야 할 형편이다.

정부의 독과점 품목에 대한 가격 인하 압력은 원가상승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가격인상 자제 분위기를 불러왔으나, 역설적으로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을 악화시키고 있다.

올해 물가 안정의 최대 복병은 임금이다. 경제 위기가 성공적으로 극복되면서 많은 기업의 지난해 실적이 매우 좋았고, 지난 2년간 임금 동결 등 고통에 동참한 많은 근로자는 올해 임금교섭에서 높은 임금인상률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공무원의 보수인상률도 5%를 넘고 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정책연대로 정부와 밀월관계를 가졌던 한국노총이 새로운 위원장의 선출과 함께 노동법의 전면개정을 요구하면서 투쟁할 것을 천명함에 따라 올해 노사관계가 다시 불안정해질 소지가 높다.

어느 나라나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지고, 물가상승이 다시 임금인상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물가안정은 물론이고 경제기반이 무너진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물가지수 관리에 치중한 각개 격파식의 물가관리정책보다는 물가안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총괄적인 물가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물가안정에 대한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노·정 대화를 복원하려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투쟁보다는 대화와 협의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동계의 자세 전환이 요구된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