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구제역 고통’… 복지시설 온정 발길 ‘뚝’

입력 2011-02-18 18:31


반찬 배달, 목욕 이발… 외부인 통제에 큰 불편

충북 음성군에 사는 중증 장애인 김모(60)씨는 지난달 이 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한 달 넘게 라면과 통조림만 먹고 있다. 지적·청각 장애가 있는 김씨는 가족이 없고 거동도 불편해 복지관에서 정기적으로 밑반찬을 대줘야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구제역 때문에 복지관 직원의 발길이 끊긴 것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 바리케이드로 막혔고 주민들이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어 복지관 직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전국적으로 구제역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피해 지역의 장애인들도 고통 받고 있다. 김씨를 비롯해 음성군에 거주하는 중증 장애인들은 지난달부터 복지관 직원이 찾아와서 해주는 목욕과 이발, 반찬 배달이 뚝 끊겨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음성군 장애인복지관 전호찬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외부인 출입을 꺼려 장애인 가정을 방문하는 게 어렵다”며 “복지관에서 사회적응 훈련을 받는 지적 장애인들도 주위 시선 때문에 복지관으로 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복지시설에서 집단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시설 안에 갇혀 버렸다. 경기도 양평군 평화의 집에 사는 중증 장애인 80여명은 구제역 발생 이후 한 달 이상을 시설 안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 이곳에선 장애인들을 강원도 원주시 대형마트로 보내 장보기와 계산을 시키는 식으로 사회적응 훈련을 해왔는데 올 겨울에는 보내지 못했다.

후원자와 함께 매년 해오던 국내외 문화탐방 나들이도 전면 중단됐다. 평화의 집 이성우 사회복지사는 “지난달 군청에서 군 외부로 나가는 일정을 취소해 달라는 공문이 왔다”며 “나들이할 때마다 식구들이 무척 좋아해 꼭 나가고 싶지만 구제역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움직이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더 나빠질 것 같아 그럴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장애인시설의 각종 행사도 줄줄이 취소됐다. 충북 충주시 나눔의 집은 오는 4월로 계획했던 모금 행사를 열지 않기로 했다. 나눔의 집 김명기 사무국장은 “도움을 드려야 할 분들(구제역 피해 주민)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행사를 열었을 때 외부인 방문으로 구제역 확산이 우려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 강릉시 장애인복지관은 양양에서 진행하려던 가축 키우기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취소했다.

복지관 관계자는 “강원 지역엔 체험마을이 많아 자주 이용해왔지만 올해는 구제역 때문에 대체 프로그램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