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해군기지로 몸살 앓는 ‘세계 7대 경관’ 후보지

입력 2011-02-17 19:00


‘세계 7대 자연경관’ 열풍이 불고 있는 제주도의 이면에서는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골프장 난립, ‘제주도판 4대강 사업’이라 불리는 하천정비사업, 그리고 강정마을에 건설 중인 해군기지 등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강정마을의 경우, 2009년까지 자연경관 1등급인 절대보존지역이었다. 180여종 야생화와 붉은발말똥게, 층층고랭이 등 멸종위기 동·식물이 다량 서식하고, 600m 길이로 늘어선 이 지역 바위들은 경관을 자랑한다. 제주도에서 은어가 가장 많이 서식하는 곳으로도 꼽힌다. 바다에서 태어난 은어는 물살을 헤치고 강정천으로 몰려들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 … 곳곳서 갈등

“우리나라 전체 어종의 70%가 발견될 정도로 환경이 우수한 곳이에요. 고래와 상어도 가끔 보이고, 청둥오리와 백로도 겨울을 나러 와요. 강정천에는 원앙새가 살고요. 자연만 훌륭한 게 아니에요. 예전부터 강정마을 주민들은 이 지역 경관을 자랑스러워했어요. 관광객들이 오면 주민들이 나서서 자연보호를 위해서 노력해 달라고 부탁하곤 했었죠.” 요즘도 해군기지 공사장 입구에서 매일 1시간씩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는 고권일(48)씨의 전언이다.

이 마을이 앞으로는 이런 경관을 보존하기 어렵게 됐다. 민군 갈등을 양산했던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는 이제 해군의 승리로 가닥이 잡혔다. 제주도는 2년 전 해군기지 건설을 앞두고 절대보존지역에서 해제시켰고, 해군은 이후 절대보존지역이 아니니 개발이 가능하다는 환경영향평가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반대하던 마을 집행부도 이젠 와해됐다.

형제도, 부모도 등 돌린 강정마을

지난 15일 오전 해군기지 건립 부지 내 문화재 시굴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주민 수십 명이 모였지만 다들 해군 측 발표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걸 해서 뭐해, 어차피 하나 안 하나 똑같은데.”

주민들은 해군 발표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 아직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제시하기 위해 모인 것처럼 보였다. 해군과 주민들만 갈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도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었다. 세대별로 봤을 때는 젊은 세대가, 직업으로는 농민보다 어민이, 성향으로는 환경보다 개발을 지지하는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립에 찬성했다.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서 주민들끼리 서로 인사도 잘 안 해요. 장례식, 결혼식 때도 서로 도와주지 않고 명절 때도 찬성파 반대파로 나뉩니다. 지금 강정마을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동네라고 볼 수도 없을 정도예요.” 윤상효(74)씨는 씁쓸하게 말했다.

부모, 형제, 친척끼리 갈등을 겪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주민들끼리 편이 나뉘어 흉기 들고 반대파 집에 찾아가고, 패싸움을 하다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대문 나서면 얼굴 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조카랑 살면서도 서로 말을 안 해. 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산소 관리도 이제 각각 해요. 원수 중의 원수입니다. 나는 고향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조카 녀석이 해군 앞에서 ‘해군기지 반대하는 큰아버지와 나는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강성원(80·농업)씨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언성이 높아졌다. 강씨의 조카들도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화해의 물꼬를 트지 못하고 있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고권일씨는 찬성, 반대파 주민들과 모두 인사를 하고 지내다 양쪽에서 모두 질타를 받았다.

반대파는 찬성파 주민들이 해군의 사주를 받아 마을 공동체를 팔아넘긴 것으로 보고 있다. “해군 버스를 탄 주민들이 단체로 식당에 다녀오는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됐어요. 바다를 지켜야 할 해녀들이 가장 먼저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고, 2007년 6월엔 주민투표를 했는데 해녀들이 투표함을 탈취하는 바람에 개표도 못했습니다. 원래 이 지역은 수심이 깊어서 해녀들이 활동하기 적합한 곳은 아니에요. 어업권 보상을 해주겠다고 해군이 약속하니 거기에 넘어간 거죠.”(윤상효)

2007년 4월 주민 총투표를 하지 않고 전 마을회장 4명 등 70여명이 모여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한 것이 싸움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해군기지 찬성파 주민들이 마을 집행부를 형성하다 지금은 반대파 주민들이 주축이 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해군에게 졌다는 판단 때문인지 지금은 활동이 지지부진하다.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했다. 전 해녀회장인 A씨는 “갈등이 잘 봉합되고 있잖아요? 전 아무 말 안 하고 싶어요”라고 전화를 끊었다.

“뭐 어떡해요? 우리는 우리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사는 거죠. 예전에 해녀들이 투표함 가져간 이유요? 아, 가지고 가긴 갔죠.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건 왜 물으세요? 전 이거다, 저거다 말 할 입장이 안 돼요. 해녀회장 된 지 한 달밖에 안 돼서 전직 해녀회장에 대해 말할 수도 없고요.” (현 해녀회장 B씨)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이곳 해안은 항구로 바뀐다. 오폐수 처리 시설을 한다지만 멸종 위기 동·식물들이 어떻게 살아남을지 알 수 없다. 해군 측은 지난달 공사를 시작했다. 주민들 사이에 생긴 벽은 더욱 높아만 가고 있다.

골프장엔 너무 쉬운 환경영향평가

골프장 난립도 제주도의 문제다. 2004년 12개에 불과했던 골프장은 현재 28개다. 숫자의 증가는 골프장 회원권 가격 하락으로, 다시 적자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2006∼2009년 4년간 골프장 영업이익률 평균은 수도권 17.3%, 충청권 20.2%, 호남권 19.4%, 영남권 22.2% 등 높은 흑자를 보였으나 제주도만 24.6% 적자였다. 회원권 가격은 2004년에 비해 5년 사이 42% 하락했고 몇몇 골프장은 입회금 반환 소송에 휘말렸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골프장 건설에 앞장섰다. 문화관광부가 고시한 골프장 개발제한 기준인 ‘총 임야면적의 5% 내 건설 가능’ 규정마저 폐지될 전망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제주특별법 개정안은 ‘총 임야면적의 5% 내 건설 가능’ 규정을 없앴다.

골프장 관련 비리 문제도 불거졌다. 2008년 12월 A골프장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선 환경 전문가인 제주대 교수 등 2명이 구속됐다. 김태환 전 도지사의 친척 김모씨도 골프장 허가 과정에 개입해 약 5억원을 받고 지난해 1월 구속됐다.

제주도 서부 중산간 지역에 건립된 골프장들의 환경오염 문제는 심각하다. 중산간 지대는 숲과 곶자왈(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제주도의 독특한 숲), 초지로 어우러져 한라산과 해안으로 이어지는 제주 생태의 중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지하수의 대규모 함양지대다.

최근에 문제가 된 곳은 곶자왈에 건립된 에코랜드.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 높은 용암이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 지형이 만들어진 곶자왈은 제주도 생태계의 보고다. 제주산 양치식물인 제주고사리삼, 한국 미기록종인 창일엽·제주암고사리, 환경부 지정 보호야생식물인 개가시나무, 미기록 목본식물 천량금, 환경부 지정 희귀식물 붓순나무, 보호식물 지정이 필요한 개톱날고사리 등이 서식한다.

애초 에코랜드는 제주도와의 환경협의에 따라 친환경 방법으로 골프장을 운영키로 했으나 최근 화학 농약을 사용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곶자왈에 다량 서식하는 양치식물 포자가 골프장에 날아가 잔디를 망가뜨리기 때문에 친환경적으로 골프장을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유다. 환경운동연합 김동주 대안사회팀장은 “애초부터 허가를 내주기 부적합한 곳에 제대로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고 골프장 건설을 허가해 생긴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경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서자 에코랜드도 향후 2년간 친환경 방법으로 골프장을 운영하겠다고 입장을 또다시 바꿨다. 그러나 2년마다 사업계획 변경이 가능해 이런 상황은 또 벌어질 수 있다.

제주도 공무원, 환경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한 ‘환경영향평가 사후관리 조사단’은 지난해 12월 골프장과 관광개발, 도로 및 항만 등 62개 사업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이행 실태를 조사했다. 40개 사업장에서 67건 위반사항이 나왔다.

골프장은 음식물쓰레기 및 지정폐기물 처리 미흡, 동·식물 조사관리 및 장기 모니터링 미흡, 농약 비료 사용 최소화 및 미생물제재를 이용한 잔디관리 등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관광지 개발사업은 비산먼지 피해 억제 저감 방안, 대기질 및 수질 조사 관리 등이 미흡했고, 도로 및 항만 건설사업은 비산먼지, 방음시설, 토사유출 등에서 문제가 지적됐다.

김동주 팀장은 “제도만 봤을 때는 제주도 환경영향평가는 전국에서 가장 우수하다. 그러나 골프장 등이 환경영향평가에 따른 이행사항을 지키지 않아도 주로 벌금만 부과되는 데 그친다. 솜방망이 처벌인 게 문제”라고 말했다.

박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