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굶는 사람 아닌 굶을까 두려운 사람이 하는 것… 이집트 시민혁명, 北서 가능할까
입력 2011-02-17 18:10
1990년대만 해도 이집트에선 북한 사람들이 남한 교민과 마주치면 먼저 말을 걸었다고 한다. 카이로에서 30년 이상 살아온 교민 김모(55)씨는 “이집트가 북한에 아주 우호적이어서 북한 사람들한테 어떤 우월감 같은 게 있었다”고 말했다. 카이로에만 수백 명이던 북한인은 큰 건물을 빌려 공동체 생활을 했다.
북한과 이집트는 63년 수교해 함께 비동맹 노선을 걸었다. 73년 4차 중동전쟁 때 북한이 이집트에 전투기와 조종사를 지원했고, 그때 이집트 공군참모 총장이 호스니 무바라크다. 이집트는 답례로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제공해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도왔다. 평양을 네 번 방문한 무바라크는 김일성 주석 사망 이듬해(95년)에야 남한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는다.
2000년대 들어 북한 경제 사정이 더 악화되면서 카이로의 북한인들은 대부분 귀국했다. 지금은 수십 명밖에 남지 않았다. 카이로 자말렉 지역 엘 살라 아유브 거리 6번지의 북한대사관. 김일성 주석과 그렇게 친했던 무바라크 대통령의 말로를 지난 3주 동안 직접 목격한 몇 안 되는 북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
홍순경(72) 북한민주화위원장은 15일 “카이로 북한대사관이 많이 축소돼서 요즘은 직원이 15명쯤 될 텐데, 애굽(이집트)의 상황을 본국에 보고하느라 무척 바빴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99년 태국 방콕 북한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다 탈북한 외교관 출신이다.
“89년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몰락할 때도 북한 정권의 관심은 도대체 어디서 구멍이 뚫렸나였습니다. 무엇을 통제하지 못했나, 서방 문물의 침투를 왜 막지 못했나. 현지 대사관에 원인을 파악하라는 지령을 계속 떨궜고, 결국 더 강한 통제 수단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카이로 대사관도 같은 지령에 답하고 있을 겁니다.”
북한의 시민혁명, 비관과 낙관
무바라크와 김정일 정권은 수십 년 장기집권을 했다. 무바라크는 아들에게 권력을 넘기려 했고, 북한은 3대 세습을 진행 중이다. 권력 기반이 군부라는 점도 같다. 이집트 인구의 40%는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며, 북한의 식량난은 이미 만연해 있다. 이집트의 극심한 빈부격차? 북한은 평양과 지방, 당원과 비당원의 차별이 아예 제도화된 곳이다.
그렇다면, 이집트 시민혁명이 북한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홍 위원장은 “없다”고 단언했다. “북한에서 애굽과 같은 변화를 바라보는 것은 북한을 잘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한다.
“이집트는 시장경제고, 야당이 있고, 언론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자유가 있어요. 북한은 폐쇄국가, 일당독재, 세습독재입니다. 언론을 독점하고, 외부 소식이 들어가지 못해요. 지금 북한 주민 중에 이집트 혁명을 아는 사람, 거의 없을 거예요. 이집트 군대는 여론에 반응하지만, 북한 군대는 저런 폭동이 일어나면 주저 없이 탱크와 기관총을 쓸 겁니다.”
하루 2시간씩 북한에 단파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는 열린북한방송 하태경(43) 대표는 생각이 좀 다르다. 그는 “빠르면 5년 안에도 이집트 같은 상황이 북한에서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10년 전과 지금의 북한을 비교해 보세요. 이집트 혁명의 동력은 정보의 확산입니다. 북한도 10년 전에 비하면 정보가 엄청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10년 전엔 라디오 듣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 탈북자 조사해보면 최소 10%는 남한과 외국 방송을 듣는 것 같아요.”
중국과 접경지역에 국제통화 가능한 중국제 휴대전화가 수천 대는 들어가 있다, 북한에서 CD플레이어를 한국 돈 1만원이면 살 수 있고 이걸로 한국 드라마 본 사람이 수백 만명은 될 것이다, MP3도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 굉장히 인기여서 한국 노래가 유행한다…. 그는 탈북자와 북한 주민을 취재하며 들은 얘기라면서 이런 변화상을 길게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돌이킬 수 없는 겁니다. 북한 주민을 감시하는 군이나 당 간부들 사이에도 요즘 금전만능주의가 굉장히 확산돼 있어요. 라디오 단속해서 장마당에 내다 팔고, 뇌물 주면 중국제 휴대전화 눈감아 주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주시해야 될 것은 (북한) 지도자들의 변화보다 주민들의 변화다. 국민의 변화를 거스를 수 있는 권력은 없다”고 말했다. “통일이 가까운 것을 느낀다”는 말도 했다.
북한의 시민혁명. 홍 위원장은 불가능하다 하고, 하 대표는 5년 남았다 하고, 이 대통령은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는데, 어느 쪽이 더 정답에 가까운지. 이 판단을 해보려고 북한을 아는,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물었다.
혁명의 조건
이집트 혁명이 가능했던 3대 조건을 꼽자면 ①곡물값 급등에 따른 식량파동과 경제난 ②억압된 자유와 부패한 정권에 대한 불만 ③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보급일 것이다. ①이 방아쇠를 당겨 ②를 폭발시키고 그 힘을 ③이 조직화했다.
먼저 ①. 식량난이라면 북한이 이집트보다 훨씬 심각하다. 90년대 중반부터 평양시민과 군인 등 일부 계층을 제외하곤 식량배급이 끊겼다. 손광주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데일리NK 편집인)은 이것을 북한 사회가 겪은 가장 큰 변화라고 진단했다.
“50년간 유지돼온 배급제 붕괴로 주민들이 각자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하게 됐습니다. 경제의 시장화가 진척됐고, 2009년 11월 화폐개혁이 3개월 만에 실패한 건 시장 세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입니다. 경제 문제로 정권과 주민의 갈등이 생겨난 겁니다.”
탈북자들이 꼽는 북한의 대표적 식량 소요 사태는 98년 황해제철소 사건이다. 배급 끊긴 황해북도 송림시 노동자들에게 제철소 간부들이 공장 집기를 중국에 몰래 팔아서 식량을 구해줬고, 당국에 적발돼 간부 몇이 처형되자, 반발한 노동자 수천 명이 연좌시위를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군이 탱크를 동원해 진압하면서 적지 않은 희생자를 내고 끝났다. 탈북자들도 직접 그 일을 겪은 사람들 외에는 몰랐을 정도로 다른 지역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식량파동은 개인적 차원이거나 소규모 표출에 그친다. 지역과 지역, 주민과 주민 사이의 정보 유통이 철저히 차단돼 조직적 저항이 나올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②체제 불만.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15일 홈페이지에 ‘이라크와 미국, 북한과 중국’이란 글을 올려 북한의 시민혁명을 왜 기대하기 어려운지 설명했다. 이런 대목이 있다.
“북한 이탈 주민들에게 김정일-김정은 승계에 대해 물어보면, 세습 자체보다는 ‘왜 장남이 아닌 3남에게 넘기려 하느냐?’는 반응이 더 많이 나온다고 한다. 철저한 통제로 고립된 세계에서 나올 수 있는 의식수준이다. 국제사회의 북한 고립정책이 김정일 정권의 주민 통제를 오히려 도와주고 있다.”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은 만약 하나의 정당이 절대 권력을 갖고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규모의 국가가 지구상에 있다면 바로 북한일 것이라고 했다. 인구, 면적, 구성원 다양성, 지정학적 위치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고 한다.
“남북 분단이란 현실이 역설적으로 북한 체제의 통제력과 지속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에 잠재된 불만이 터져 나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게 ‘남한’이란 적입니다. 당을 중심으로, 당을 지도하는 국방위원장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직도 먹히는 곳이 북한입니다.”
손광주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만 북한 사람들 머릿속엔 ‘민주주의’란 단어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조선이 망하고,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바로 공산주의를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그것도 60년대 말부터는 사회주의도 아닌 수령체제로 넘어갔습니다. 민주란 단어가 없으니 민주화란 발상을 못하고, 행동이 나오기도 어려운 겁니다.”
세 번째 조건, ③SNS에는 최근 변화 조짐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달 23일 평양에서 이집트 통신사 오라스콤의 나기브 사위리스 회장을 만났다. 오라스콤은 2008년 합작회사 ‘고려링크’(오라스콤 지분 75%, 북한 25%)를 설립해 북한에 3G 이동통신망을 깔고 있다.
네덜란드의 통신 전문 매체 텔레콤페이퍼는 최근 고려링크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30만1399명이라고 보도했다. 평양 외에도 12개 주요 도시, 59개 소도시, 22개 철도와 고속도로에 통신망이 깔려 전체 인구의 90% 가까이 커버된다는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이 휴대전화는 국내통화와 문자메시지는 가능해도 국제전화는 쓸 수 없다. 30만대가 보급됐다지만 2400만 인구에 비하면 많은 게 아니다. 충성심 높은 기득권층이 주로 쓸 테고, 도·감청될 것이다. 이집트 같은 SNS 혁명이 되기엔 동력이 한참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굶는 사람, 굶을까봐 두려운 사람
지금까지 얘기를 종합하면 북한은 ①식량난이 심각해진 건 이미 90년대부터인데 ②체제 불만을 건드리지 못하게 철저히 통제돼 왔고 ③SNS도 아직 혁명 동력이 되기엔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이집트 같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래도 북한 내부의 변화 가능성에 여지를 남겨두는 이들이 있었다.
“북한 내부 갈등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예측하는 건 ‘너무너무’ 어렵다. 단시일엔 아니지만 언젠가는 되리라고 본다. 이집트 모델과 전혀 다른, 아주 색다른 형태가 될 수 있다.”(손광주 선임연구위원)
“민주화는 범세계적 현상이고 흐름이다. 북한 주민들은 몰라도, 엘리트 계층에는 오히려 영향을 미칠 수 있다.”(이봉조 전 차관)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1일. 이 사태를 식량파동이 초래했다고 분석한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 앤드 메일은 미국 하버드대학 식량안보 전문가 로버트 팔버그의 설명을 이렇게 인용했다.
“이집트인들은 배가 고프지 않다. 하루 평균 4000㎉를 섭취해 영양 부족보다 영양 과다가 오히려 건강상 문제인 사람들이다. 정말 먹을 게 없는 사람은 조용히 굶주리는 수밖에 없다. 식량폭동은 굶주리게 될까봐 두려운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북한의 식량난과 시민혁명의 가능성을 물었을 때 홍순경 위원장의 답변은 아주 간단했다. “이집트에 비하면 북한 사람들은 너무 궁핍해서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리느라 다른 생각할 사이가 없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에서 ‘굶주리게 될까봐 두려운 사람들’은 권력층에 있다. 북한 체제에 변화가 생긴다면 권력층 내부의 충돌에서 시작하는 위로부터의 혁명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