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민 굶주리는데 호화 생일잔치라니

입력 2011-02-16 20:19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의 차남 김정철이 14일 싱가포르에서 록 가수 에릭 클랩턴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이 KBS 카메라에 잡혔다. 그가 경호원과 여성 수행원 등 20여명을 거느리고 VIP석에서 관람한 이 공연 요금은 1인당 35만원. 귀에 피어싱을 한 김정철이 다이아몬드 등 호화 쇼핑을 하면서 10여일 동안 머문 특급호텔 숙박료는 하루 60만원.

주민들 굶주림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아들에게는 밸런타인 데이에 록 공연 등 자본주의 문화를 만끽하도록 한 김정일이 어제 생일을 맞았다. 백두산 불꽃놀이, 삼지연 얼음조각축제 등 축하 행사가 치러졌고 한편으로 중동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민중 저항이 옮아올까 두려워 평양 시내에 탱크부대를 주둔시켰다. 북한은 내년 강성대국 선포를 위해 세계 40여개국에 식량을 요구했지만 여의치 않다. 국제 신뢰를 잃은 까닭이다. 폴란드 정부는 석탄을 줄테니 식량을 달라는 북한 요청에 거래대금을 잘라먹은 과거의 예를 들면서 거절했다.

명백한 진실에는 눈 감고서 인터넷을 벌겋게 물들이는 남한의 두더지들은 언제 빛을 볼 것인가. 인터넷 포털 네이버와 다음에는 ‘조선이 초강성대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따위의 허무맹랑한 선전글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69회 생신을 진심으로 경축드립니다. 만수무강하시옵소서” 같은 넋두리들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떠다니고 있다. 얼마 전 작고한 황장엽씨는 10여년 전 남한 좌파의 사상적 은사라는 지식인과 대담한 뒤 “아무리 진실을 말해줘도 못 알아듣는다”고 개탄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가려도 산천을 감싸는 봄기운까지 막을 수는 없다. 민심은 이미 이반했다. 다만 군정(軍政)과 다를 바 없는 압제 체제를 뚫을 계기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설픈 동정은 김정일 체제를 연명시키고 주민들을 질곡에서 해방하는 일을 지연시킬 뿐이다. 지난해 천안함과 연평도를 공격한 북한이 지금 대화를 갈구하는 까닭은 그만큼 사정이 절박하다는 증명이다. 억지로 남북 관계를 풀려 할 게 아니다. 도발에 대비하면서 지긋이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