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송세영] 구글맵의 비밀

입력 2011-02-16 20:08


알면 안 되는 사람은 알 수 있도록, 알아도 무방한 사람은 알 수 없게 해놓은 비밀이 있다. 비밀 아닌 비밀, 인터넷서비스 업체들의 위성사진 이야기다.

네이버(Naver)나 다음(Daum)같은 인터넷 포털들은 지도와 함께 항공기나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고해상도 사진을 서비스 중이다. 단순 지도와 달리 입체감과 현실감이 있어서 인기가 높은데,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부분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숲처럼 보이는 이곳들은 청와대나 군부대, 발전소, 교도소 등 법에 따라 사진촬영이 금지된 중요 보안시설들이다.

네이버나 다음은 그나마 정교하게 처리해서 정확한 지리정보가 없는 이들은 진짜 숲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야후(Yahoo)의 경우 그래픽 처리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누가 보든 중요시설이 있는 곳이라는 걸 눈치 챌 수 있다.

구글(Google) 코리아가 제공하는 위성사진은 그래픽 처리를 통해 위장하는 대신 해상도를 대폭 낮췄다. 이 때문에 인구 1000만명이 살고 있는 거대도시 서울의 위성사진도 큰 도로를 중심으로 시가지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위성사진의 경우 통상 이용객들이 많은 대도시는 해상도가 높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오지는 해상도가 낮은 것과 대비된다. 네이버나 다음처럼 보안시설에 대한 촬영을 제한하고 있는 법규를 지키기 위한 것인데 이용자로선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기 위해 구글의 위성사진을 즐겨 이용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겐 특히 더 그렇다고 한다.

구글 코리아가 아닌 구글의 미국 본사가 직접 서비스하는 위성사진은 전혀 다르다. 한국에서도 구글 코리아가 아니라 구글 본사의 웹주소를 입력해 구글맵을 실행하면 해상도 높은 서울의 위성사진을 볼 수 있다. 미국 구글 본사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인 구글 어스도 마찬가지. 중요 보안 시설의 위치와 규모는 물론 내부 동선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구글이 위성사진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4월부터다. 이후 구글 위성사진에 중요 보안시설들이 노출돼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보도도 몇 차례 나왔다. 정부도 나름 대응에 나섰지만 한계가 있었다. 국내 업체들은 관련 법에 따라 규제할 수 있지만, 해외 업체들은 국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국가안보상 꼭 필요하다면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할 텐데 이도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졌다. 네이버나 다음, 야후의 위성사진 중에서 그래픽으로 위장된 부분과 미국 웹주소의 구글맵이나 구글어스를 비교해보면 어디가 중요 보안시설인지 한눈에 드러난다. 이 중에는 인근 주민들도 잘 알지 못했던 보안시설들까지 친절하게 노출시키고 있는 경우도 있다. 보안을 위해 제정된 법규가 오히려 심각하게 보안을 해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 셈이다. 이 정보가 보안상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 한국을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는 적대세력들이 쾌재를 부를 일이다.

중요 보안시설들을 적대세력이나 테러리스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진촬영 등을 규제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노출돼 더 이상 비밀일 수 없는 정보까지 억지로 보호하는 것은 명분도 실리도 없다. 더 나아가 현실과 괴리된 법규 때문에 중요 보안시설의 위치를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직무유기다.

경제적으로도 손실이다. 해외업체는 규제하지 못하면서 국내업체만 규제하는 것은 명백한 역차별인데, 이는 스마트폰 등장 이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위치기반 서비스 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에 은거하고 있는 알카에다의 테러리스트나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대남침투요원들도 제 손금처럼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를 선량한 대한민국 시민들만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은 역설적인 상황을 이제는 끝내도 되지 않을까.

송세영 사회부 차장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