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살이 5년’ 방글라데시에서 온 낸시 디팔리 다스씨 “10살 딸 우리말 다 까먹었어요”
입력 2011-02-16 19:35
방글라데시에서 온 낸시 디팔리 다스(29)씨는 두 아이의 엄마다. 남편 비플로브 레오나르드 다스(39)씨와 함께 서울 기독대학교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내년이면 부부 모두 신학박사(Th.D.) 학위를 받는다.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1% 미만인 고국에 돌아가면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하는 게 이들의 꿈이다. 자리도 봐 놨다. 수도 다카의 변두리, 42명의 고아들이 사는 마을에 작은 교회를 짓고 따뜻한 밥을 주고 사랑을 전할 생각이다. 학비를 마련하러 아르바이트하는 낸시를 15일 서울 신당동 레스토랑 ‘13th’에서 만났다.
낸시의 생활
“여기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어요?”
낸시가 건넨 첫 인사. 2009년 교회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기에 명함 한 장 챙겨온 게 이렇게 연결됐다. 13th는 예수님의 13번째 제자라는 뜻으로 예수마을교회(장학일 목사)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시작해 지금은 인근 예술고등학교의 급식 식당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이곳에서 일한다. 테이블을 닦고 바닥을 쓰는 단순 노동이다.
학생들은 그녀를 ‘헬로(Hello)’라고 부른다. 2년째 일하지만 서로 교류가 없다. 말 때문이다. 학생들은 영어가 서투르고 낸시는 한국말이 어눌하다. 그래도 반가운 얼굴이라 “헬로” 하고 불러보는 것이다. 식당 일이 끝나고 나면 경기도 안양시 평촌의 유치원으로 이동한다. 유치원 4∼5세 아이들은 그녀를 “맘(Mom)”이라 부른다.
“신기했어요. 처음엔 헬로밖에 못했는데 지금은 제 말 다 알아들어요. 너무 좋아요.”
어릴 적 선생님이 꿈이었던 그녀는 행복하다고 했다. “힘들지만 만족해요.”
한국에 온 지는 5년째다. 둘째 매티우스가 9개월 되던 2007년 한국에 왔다. 남편은 그녀보다 먼저 한국에 들어와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비자 못내줘요. 애 둘 데리고 어떻게 살려고 해요?”
애 둘 딸린 방글라데시 여성에게 비자는 나오지 않았다. “‘하나님 당신이 원하신다면 나는 가야만 해요’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그랬더니 비자 나왔어요.”
자칫 이산가족이 될 뻔한 에피소드를 낸시는 ‘응답’의 예로 들었다.
4대째 기독교 집안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국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88%가 이슬람교도이고 기독교인은 1% 미만이다. 낸시네는 4대째 기독교 집안이다. 남편 비플로브도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다스 집안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인 비플로브 부친을 비롯해 다카의 명망가를 배출한 집안이다. 양가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 5남매 중 유독 밝고 예쁜 둘째 낸시를 눈여겨보던 비플로브의 아버지는 낸시가 열아홉이 되자 혼사를 제안했다. 둘은 방글라데시에서는 이례적으로 기독교식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됐다.
비플로브는 방글라데시 수자원 공사 직원이었고, 낸시는 칼리지 1학년생이었다. 열 살 차이. 방글라데시는 보통 남자가 여자보다 열 살 이상 많다고 했다.
둘은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신학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엔 신학교가 없었다. 교회에 가면 무슬림이 훼방을 놓아 예배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 교회 담임목사가 부부에게 한국 유학을 제안했다.
남편이 먼저 한국행 티켓을 끊었다. 낸시는 임신 중이어서 출산 뒤에 한국에 가기로 했다.
한국교회에 진 빚
남편은 경기도 양평군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 입학해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다. 생활비는 영어를 가르쳐 충당했다. 낸시와 두 아이가 한국에 들어올 무렵 남편은 한 전도사의 소개로 예수마을교회에 연결됐고, 교회의 후원을 받게 됐다.
“2년간 전부 교회에서 지원했어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교회는 교회 건물에 투 룸을 마련해 부부를 살게 해 줬고, 신학공부를 하겠다는 부부의 학비를 대줬다. 학업에 전념하라는 뜻에서 생활비도 매달 50만원씩 지원해줬다. 아무 조건 없이.
둘은 서울기독대학교 기독대학원에 진학해 나란히 신학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3년째부터 교회의 지원은 축소됐다. 부부는 영어를 가르치고 식당일을 해 월 90만원씩 벌었다. 두 아이의 양육비와 낸시의 학비(50%는 학교 장학금)를 감당하기엔 부족한 돈이지만 아끼고 아껴 모아 지금까지 버텼다. 남편은 이번 학기 논문을 제출하면 박사학위를 받는다. 낸시는 1년 뒤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그 사이 아이들은 훌쩍 컸다. 첫째 매리언(10)은 신당초등학교 3학년이다. 벵골어는 다 잊어버리고 한국말만 잘해 부모는 한걱정이다. “내년에 돌아가면 큰일이에요. 우리말 다 까먹었어요.”
매리언은 요즘은 춤과 일본어 공부에 푹 빠져 있다. 친구가 많아 방글라데시에 돌아가도 다시 한국에 오기를 원하는 눈치다.
둘째 매티우스는 교회 어린이집에 다닌다. 여태 밤중수유를 못 끊어 걱정이라는 낸시. “방글라데시는 다섯, 여섯 살까지 모유 먹여요.” 더 큰 걱정은 발육 문제다. 다섯 살인데도 밥을 거부해 몸무게가 13㎏밖에 나가지 않는다. 두 돌 아기 몸무게다. 그래도 또래와 즐겁게 놀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없는 것보단 나아요”
“다섯 살도 안 된 여자 아이들도 납치와 성폭행 당하기 일쑤거든요. 경찰은 돈만 쥐어주면 모른 척 하고요.”
낸시는 사실 딸을 생각하면 방글라데시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경찰은 범죄를 보고도 눈을 감는다. 낸시도 대학 때까지 부모가 릭샤(인력거)로 데리고 다녔을 정도로 여성에게 위험한 나라다. 그곳에서 딸 키울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하다.
그래도 교회를 생각하면 돌아가야 한다. “방글라데시 여성을 위해 목회해야 해요. 남편이랑 신학대학원도 세우려고요.”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가정예배를 드리는 낸시 가족. 그녀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다윗’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부족해도 넉넉하게 살 수 있는 지혜를 들려줬다.
“그래도 없는 거 보단 낫잖아요(Something is better than nothing). 우리는 행복해요.”
글 이경선 기자·사진 강민석 선임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