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계 도제식교육 실태… 지도교수 바꾸면 배신 간주, 맞아도 말못하고 침묵

입력 2011-02-17 01:10


서울대에서 진상조사 중인 성악과 A교수의 제자 폭행 사건을 계기로 음대는 물론 미대, 체대 등 예체능계의 도제식 교육 시스템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A교수가 10년이 넘는 재임기간에 학생에 대한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은 물론이고 수업횟수나 성적평가 등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는 음대 특유의 ‘클래스(class) 제도’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클래스 제도란 학생 4∼5명이 입학하면서 한 지도교수에게 맡겨져 졸업 때까지 실기레슨을 집중적으로 받는 제도다. 제자가 전적으로 교수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A교수의 클레스 제자인 졸업생 B씨는 “입학할 때 A교수의 명성만 보고 ‘선생님이면 나를 끌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중간에 클래스를 바꾸는 건 배신으로 통하기 때문에 폭행을 당하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도제식 교육은 미대도 마찬가지다. 교수 밑에서 오랜 시간 ‘시다’로 일하는 건 미대생이 토로하는 가장 큰 고충이다. 명색은 ‘작업 보조’지만 교수의 화랑이나 작업실에서 무보수로 일하는 게 대부분이다. 서울지역 미대에 재학 중인 C씨는 “기초 작업같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90%이상 학생들이 한 것”이라며 “학생들이 거의 다 만들면 교수가 사인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B씨는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라인’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무보수라도 감수한다”며 “교수가 아니라도 유명한 강사의 경우 그 라인으로 들어가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그러나 작업실이나 화랑에서 이뤄지는 도제식 교육은 통제를 받지 않아 교수의 횡포 가능성이 늘 존재하고 있다. 예고에서 서울대 미대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미대교수를 꿈꾸던 D씨는 최근 미술계를 떠나 피자가게를 열었다. D씨의 과 후배는 “D씨가 졸업하고 10년 넘게 교수 밑에서 ‘뒤치다꺼리’를 했는데도 한 번 밉보여서 교수가 내친 걸로 안다”며 “더럽고 치사해도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게 이 바닥의 진리”라고 했다.

선·후배 관계가 중시되는 체대는 교수가 조교를 통해 학생을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K대 체대의 한 학생은 “체대는 교수에서 조교, 학생으로 이어지는 ‘연좌제’가 암묵적으로 존재한다”며 “조교를 통해 영문도 모르고 얼차려를 당해도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체대 교수가 학생의 리포트를 베껴 자신의 논문에 쓰거나 학습 교재를 대필하게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경기권의 한 사립대학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한 E씨는 “나와 동기가 방학 내내 쓴 무도 관련 학습교재를 교수 이름으로 내는 걸 봤다”며 “어떤 교수는 연구 활동에 필요한 자료를 1년 내내 팀 리포트로 주고 번역만 시켜 ‘영문과가 아니냐’는 농담도 했다”고 전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