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권기석] 이집트 北대사관의 정적
입력 2011-02-16 21:41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기 위해 지난 14일 오전(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택시를 탔다. 미리 본 지도에서 대사관은 카이로의 부촌(富村)이자 여러 나라 대사관들의 밀집지인 자말렉에 있었다. 택시기사는 자말렉에 도착해서도 각 대사관 앞을 지키는 경찰관에게 여러 차례 길을 물었다.
하지만 굳이 길을 묻지 않아도 북한대사관은 한국 사람이라면 수십m 밖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3층 정도 높이 대사관 건물 벽에 걸린 빨간색 현수막이 표식 역할을 했다. 세로로 드리워진 두 개의 현수막에는 하얀 글씨로 ‘조국’ ‘고난’ 등이 쓰여 있었다.
언제 내걸린 현수막인지 알 수 없지만, 북한이 해외 공관에서도 체제 수호에 노력한다는 사실은 인상적이었다. 북한이 현재 느끼는 위기감을 보여주는 상징일지도 모른다.
함성과 경적으로 시끄러운 카이로 시내와 달리 북한대사관 앞은 고요함만이 있었다. 북한대사관에서 이집트 시민혁명의 중심 타흐리르 광장까지는 불과 2㎞ 거리다. 대사관에서 남동쪽으로 넉넉잡고 30분만 걸어가면 광장에 이른다. 지난 11일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이 발표되던 저녁 광장의 우렁찬 함성소리는 광장에서 4∼5㎞ 떨어진 카이로 시내 전역에까지 울려 퍼졌다. 당연히 북한대사관 직원 귀에도 그 함성은 들렸을 것이다.
시민들이 최고통치자를 쫓아낸 상황을 북한대사관 직원과 교민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은 ‘북조선에선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애써 상황을 무시하고 있을까. 아니면 세계관이 일시에 바뀌는 충격을 받았을까.
그들의 혼란스런 심정은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생생한 목격담과 함께 북한 내부에 전해질 것이다. 이집트 시민혁명으로 민주화 요구는 이제 세계사적 흐름이 돼 가고 있다. 북한이 현 체제를 영구히 지키기 어려운 이유다.
권기석 국제부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