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교회 재건축 설계 최동규 소장·이은석 교수, 교회는 스포츠센터가 아니다

입력 2011-02-16 20:41


한국교회 양적 팽창주의 산물

서울 신문로 새문안교회. 광화문 서편 새문(돈의문) 안에 있는 교회라는 뜻이다. 1885년 4월 5일 입국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자택에서 첫 예배를 드린 뒤 1887년 9월 27일 지금의 피어선빌딩 자리에 교회를 짓고 당회를 구성해 최초의 조직교회로 기록됐다.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이자 ‘한국 교회의 어머니’라 불리는 새문안교회(담임목사 이수영)가 새 옷을 입는다. 1887년과 1910년, 49년, 72년에 이어 다섯 번째 건축이다. 2015년쯤 완공될 새문안교회 새 성전은 130년 전통을 이어받고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서울 중심부의 한국교회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건축설계를 맡은 최동규(64) 서인종합건축사무소장과 이은석(49)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는 “실용성에 성경적 은유와 상징을 더해 교회 건축사에 의미 있는 장을 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1일 서울 반포동 서인종합건축사무소에서 만난 최 소장과 이 교수는 오늘날 한국 교회 건축이 상업화와 기능주의적 사고에 매몰돼 있다고 지적했다.

“(교회 건물 사진을 보이며) 십자가를 가려 봅시다. 대형마트나 스포츠센터, 혹은 주민센터 같다는 느낌 안 드세요. 교회 특유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최)

초기 교회 건축의 주요 개념은 ‘교회는 거대한 성경’이라는 것이었다. 건축물 자체에서 성경적 교리를 표현하려 애썼다. 이후 모더니즘 시대를 거치며 실용성이 최고의 가치였다. 결국 상업시설, 문화시설과 차별점이 없어졌다. 한국 교회의 양적 팽창주의 역시 개신교 건축물의 개성을 없애는 데 한몫했다.

“‘본당에 몇 명이 들어가야 한다’ ‘옆 교회보다 더 커야 한다’는 등 양적인 부분만 신경 썼던 게 최근 경향이었죠.”(이)

중요한 가치는 뒷전이었다. 은유와 상징 등은 실종됐다. 건축물 자체에서 교회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두 사람도 건물 자체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도록 특유의 멋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가톨릭 건축물이 규모는 작지만 질적인 부분에서 개신교 건축물보다 뛰어난 경우가 많다고 평가한다. 양적 팽창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질 높은 건축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아워 레이디 오브 앤젤스 처치(Our Lady of Angel’s Church)’를 비롯한 외국 교회는 대형 십자가를 강조하지 않아도 건물 자체만으로 성전 느낌을 줍니다. 그런 멋을 구현하고 싶은 거죠.”(최)



상징과 은유, 공공성의 가치

새문안교회는 최초의 개신교 교회이면서 서울의 심장부에 위치해 있는 신앙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교회의 새 성전이 어떤 식으로 건축되느냐는 향후 한국 교회건축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지리적 여건상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 교회의 얼굴로 각인될 가능성도 높다.

새 성전은 규모보다 상징과 은유, 공공성에 초점을 맞췄다. 건축물에 상징과 은유를 입혀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한다. 벽면은 부드러운 곡선 형태다. 마치 어머니가 양팔을 벌리고 있는 듯하다. 하나님의 따뜻한 품을 표현해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이 교수는 “한국 교회의 역사, 서울의 중심부, 민족의 미래를 품에 안는 몸짓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기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벽면에는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벽은 빛을 발생시키는 발전기 역할을 한다. 이 빛 역시 상징을 내포한다. 태초 하나님의 빛을 나타내면서 교회가 빛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도 담는다. 빛은 66.3m 위 건물 꼭대기에서 외벽을 타고 내려와 내부 본당 강단 위까지 이어진다. 은혜의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을 보여줄 것이다.

교회의 역사적 의미와 전통성은 입구 왼쪽 탑에서 구현된다. 숫자 ‘1’ 모양의 탑은 첫 번째 교회라는 의미와 함께 항상 최고인 하나님을 담는다.

공공성의 가치도 추구한다. 아치형 문에 공공성에 대한 교회의 고민이 숨어 있다. 아치는 권위의 탈피와 맞닿는다.

“세종문화회관이나 국회의사당처럼 입구에 열주(列柱)를 세워놓는 것은 권위와 힘의 과시입니다.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되죠. 누구나, 언제든지 찾아와 하나님을 만나는 공간이 교회입니다. 입구를 아치형으로 만든 것은 그 때문입니다.”(최)

새 성전이 완공될 즈음엔 교회 측면과 세종문화회관 사이에 시민공원이 만들어진다. 교회는 새문안길과 공원을 연결하는, 누구에게나 열린 문으로도 사용된다. 새 성전이 건축되면 새문안길 쪽에서 교회를 통과해 바로 세종문화회관 뒤쪽으로 갈 수 있다.

“아치형 문은 세상과 도시에 마음을 연다는 의미도 가집니다. 교회 앞 광장과 1층 로비는 공공 회랑으로 씁니다. 로비에는 조그만 호수도 생겨 교인이 아닌 사람도 차 한잔 마시며 동료, 친구와 얘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됩니다.”(이)

교회 공간을 개방한 것은 자기중심적인 한국 교회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다. ‘교회는 기독교인만의 배타적 공간’이라는 인식을 벗겠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믿지 않는 사람도 교회의 혜택을 함께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부연했다.

믿지 않는 사람도 교회의 혜택 누려야

최 소장과 이 교수는 한국 교회 건축의 권위자다. 최 소장은 1981년 서울 신사동 소망교회 건축을 맡은 이래 100곳 이상의 교회 건축을 맡았다. 그 역시 실용성, 대형화의 가치를 중시했다. 상징과 은유의 매력에 관심을 기울인 건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세계 명품교회를 가보면 규모가 크거나 실용성만 강조한 교회는 하나도 없어요. 기능적 측면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건축물 자체에 성경적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이 교수 역시 “실용성만 좇는 시대는 지났어요. 건축물 자체에 상징을 드러내는 것이 대세가 될 겁니다. ‘사랑한다’고 직설적으로 고백하는 것도 좋지만 상징과 은유로 마음을 은근하게 표현하는 것도 멋있잖아요.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철학은 이수영 목사의 생각과 맞아떨어졌다. 이 목사의 뚜렷한 의지와 목표의식이 없었다면 이 교회 새 성전 역시 기존에 유행하는 식으로 지어질 뻔했다는 것.

옛것과 새로운 것의 아름다운 조화 역시 이번 재건축의 키워드다. 전통을 살리면서 새것을 창조적으로 덧입히는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72년 만들어진 지금의 예배당은 구한말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의 아들 이구 선생의 작품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새문안교회를 설계했다. 현대 건축물이지만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 이 교수는 그 소중한 가치를, 장기를 이식하듯 새 성전에 녹여내겠다고 다짐했다. “새문안교회의 특징인 벽돌과 스테인드글라스 등 버리기 아까운 소재를 활용할 겁니다. 교인이 새 성전에 들어서서 ‘우리 교회구나’라 느낄 수 있어야 하니까요.”

글 조국현 기자·사진 구성찬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