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기의 溫시네마]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분의 예비하심으로
입력 2011-02-16 19:31
127 시간
영화 ‘127시간’은 2003년 미국 유타주 블루존 캐니언 등반 중 떨어진 바위에 팔이 낀 채 조난되어 127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다 바위에 깔린 팔을 등산용 칼로 직접 자르고 살아 돌아온 ‘애런 랠스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캠코더, 디지털카메라와 각종 휴대용 전자기기를 즐기는 한창 잘나가는 랠스턴. 주말을 맞아 언제나처럼 누구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채 ‘블루존’으로 혼자만이 즐길 수 있는 캐니어닝(canyoning) 여행을 떠난다. 스포츠카(SUV)로 사막을 횡단하고 자전거로 질주하면서 암벽을 맨손으로 오르내린다.
수천년 전부터 블루존의 협곡에서 랠스턴을 위해 그 자리에 놓여 있던 고통의 바윗덩어리가 수갑처럼 랠스턴의 손을 협곡의 담벼락에 철커덕 물어 버릴 때까지 그를 기다리는 것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처절한 외로움이란 것을 알지 못했다.
카메라는 현실을 부정하는 랠스턴의 얼빠진 표정을 뒤로하고 어슴푸레한 어둠의 밑바닥을 조용히 응시한 후 이내 협곡을 따라 부감으로 수직 상승한다. 하늘과 맞닿은 블루존의 거대한 돌덩어리 산에 오직 랠스턴 혼자만이 남겨져 있음을 관객에게 보여 준다.
2009년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던 대니 보일 감독은 127시간으로 2011년 같은 영화제에 다시 한 번 6개 부문의 후보로 올랐다. 그의 영화의 주인공들은 생존의 순간에서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절대자가 그들을 위해 예비한 것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자말’이 겪었던 순간들이 거액이 걸린 퀴즈쇼의 답인 것처럼 말이다. 만일 이러한 화두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대니 보일의 연출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위기탈출 넘버원’과 같은 예능 다큐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스토리는 아주 단순하고 등장인물은 단 한 명뿐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네 인생의 주연은 자신뿐인 것처럼. 생존을 위한 랠스턴의 처절한 사투는 그가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게 한다. 같이 있으나 외로움을 느끼는 여자 친구와 자연의 위대함을 일깨워준 아버지, 매번 자동응답기와 대면하게 만들었던 어머니를 떠 올린다.
랠스턴은 그렇게 죽음의 문턱에서 자기 자신과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영적인 체험인 동시에 그분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순간이다. 마지막 선택의 찰나에 수천년 동안 랠스턴을 기다리던 블루존의 바윗덩어리에게 자기 일부분을 돌려주고 새로운 삶을 부여 받는다. 그리고 어쩌면 랠스턴 인생에서 처음으로 신께 감사를 표한다. “생큐.”
대니 보일 감독은 그의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과 경쾌한 8비트의 음악으로 이 단순한 스토리에 리듬을 부여한다. 영화의 인트로와 엔딩에 등장하는 한 화면이 3분할 된 쇼트는 랠스턴의 일상과 여행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처음과 끝의 화면 분할 쇼트는 다르다. 전자는 어두운 저녁에 죽음을 향해 달리는 랠스턴의 무의미한 일상이라면 후자는 밝은 낮에 희망으로 가득 찬 그의 새로운 삶이다. 죽음의 순간에서 자신과 대면하고 신께 감사를 전한 랠스턴의 모습은 분명 그 경험 이전과 다를 것이다.
“제 인생에서 가장 축복받았던 순간이었죠.” 이 영화는 일상의 단조로움에 숨어 있는 삶의 감사함을 말한다. 마치 절망의 순간에서 주님을 만난, 팔 다리가 없는 실존 인물인 ‘닉 부이지치’처럼 말이다. 랠스턴 역을 연기한 배우 제임스 프랑코는 올해 아카데미영화제의 MC이자 가장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이다.
그리고 잊지 마시길! 반드시 행선지를 알리고 떠나라.
(서울기독교영화제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