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삼백 리, 5일장에 피는 봄… 보성 벌교장·하동 화개장·구례 구례장

입력 2011-02-16 19:47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마솥 국밥의 구수한 냄새와 엿장수의 투박한 가위질에서 아련한 향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시골 오일장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축제장이다. 오일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만은 아니다. 그곳은 이웃끼리 정을 나누는 사랑방이자 막걸리 한 사발에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잔칫집이다. 땅에서 캐고 바다에서 건져낸 싱싱한 봄이 구수한 사투리와 어우러지는 남도 오일장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벌교장(전남 보성)=꼬막과 짱뚱어의 고장이자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전남 보성의 벌교는 요즘도 고흥 순천 등 인근의 장꾼들이 몰려드는 오일장으로 유명하다. 끝자리가 4와 9일인 장날에는 벌교역전에서 제2부용교까지 300m 구간을 비롯해 벌교역 앞 도로와 골목이 모두 장터로 변한다.

벌교장의 하루는 해무를 뚫고 나타난 벌교 아낙들이 갯벌에서 막 건져낸 싱싱한 봄을 머리에 이고 총총걸음으로 소화다리 건너 벌교역전 시골장터로 하나 둘 모여들면서 시작된다. 하동의 화개장이 없는 것은 없는 장이라면 벌교장은 없는 것이 없는 장. 어물전과 포목점 청과점 옹기점을 지나면 지게, 삼태기, 발대, 채, 대비, 빨랫방망이 등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들이 널찍한 공터를 점령하고 있다.

벌교장이 시골장의 정취를 온전히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태백산맥’의 무대로 나오는 옛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 벌교역에서 홍교까지 1㎞도 안 되는 도로를 중심으로, 소설 속의 임만수와 대원들이 숙소로 이용한 일본식 2층 목조건물인 남도여관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늘어서 있다. 여행의 피로는 율포해수욕장에 위치한 보성해수녹차탕에서 푸는 것이 좋다.

◇화개장(경남 하동)=가수 조영남의 ‘화개장터’로 유명해진 경남 하동의 화개장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온갖 산물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시골장이었다. 1960년대까지 노량에서 출발한 장사꾼 배가 줄을 지어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 화개장으로 모였다. 하지만 화개장도 대형마트에 밀려 요즘은 지리산이나 섬진강을 찾은 관광객들이 호기심에 한번 쯤 들러보는 장으로 쇠락했다.

화개장은 끝자리가 1,6일인 날에 열리지만 장날보다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에 더 붐빈다. 초가지붕이 멋스런 장옥은 재첩국이나 장터국밥을 파는 식당과 건어물전, 잡화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좌판은 악양들판에서 나는 봄나물과 남해에서 갓 건져낸 해산물들의 차지.

화개장은 김동리의 단편소설 ‘역마’의 무대로도 이름 높다. 장터 입구엔 채장수와 옥화의 만남 등 소설 줄거리와 그림을 대리석에 새긴 조각물이 설치돼 있다. ‘옥화네 주막’이라고 간판을 내건 음식점에선 소설 속의 계연이 금방이라도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밥을 말아 줄 것만 같다.

화개장터는 ‘박경리 토지길’ 제2코스와 ‘이순신 백의종군로’의 출발점이자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십리벚꽃길로도 유명하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등장하는 악양면 평사리의 최참판댁도 가깝다.

◇구례장(전북 구례)=전남 구례의 구례장은 전통시장으로서는 드물게 조선시대 한양의 장처럼 한식 장옥으로 단장을 했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퇴락한 장옥(場屋)들을 말끔히 헐어내고 5500여평의 장터에 35동의 기와집 장옥과 4동의 팔각정 등으로 옛날 분위기를 재현한 것이다.

끝자리가 3일과 8일인 날에 열리는 구례 오일장은 섬진강에서 태어난 해가 지리산 깊은 계곡에 봄빛을 뿌릴 때 쯤 활기를 띤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북적거리는 곳은 먹물을 잔뜩 뒤집어 쓴 갑오징어를 비롯해 꼬막, 꽃게, 피조개, 굴, 낙지, 멍게 등 온갖 해산물이 점령한 어물전 좌판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그램 단위로 포장을 해 판매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넉넉한 눈대중으로 물건을 사고판다. 영호남 물물교류의 장이었던 구례 오일장엔 고추전 미곡전 이불전 옹기전 그릇전 대장간 철물전 잡화전 채소전 옷가게 생선전 건어물전 지업사 정육점 과일전 등 없는 것이 없다.

인근의 산동 상위마을과 현동마을은 산수유꽃이 피면 마을 전체가 샛노란 점묘화로 변하고, 지리산 피아골 계곡의 마지막 마을인 직전마을은 고로쇠나무 수액으로 유명하다. 토지면 오미리의 곡전재와 마산면 상사마을의 쌍산재는 한옥 체험숙박지로 인기다.

글·사진=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