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발급 제한’ 조항 지나치게 광범위

입력 2011-02-15 21:54

지난 10일 입법예고 기간이 만료된 외교통상부의 여권법 시행령 개정안은 ‘국위 손상자’에 대한 여권발급 제한기간을 사안에 따라 1∼3년으로 세분화했다. 그동안 시행하던 내부 지침에 제한기간이 일률적으로 3년으로 돼 있어 가혹하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살인·인신매매, 성범죄, 마약범죄 등은 3년, 여권 위·변조, 밀항·밀입국 등은 2년, 국외 위법행위로 인해 해당국이 공식적 항의·시정·요청 등을 제기한 경우는 1년 등으로 여권 발급 제한 기간을 세분화했다.

문제는 1년에 해당되는 요건이 너무 광범위해 해외 선교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외교부 내에서도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해외의 과도한 선교활동을 제한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계는 ‘국제 흐름 역행’ ‘중동 국가 눈치 보기’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사무총장 한정국 목사는 15일 “미국 정부는 자국민이 그렇게 많이 죽어가는 이라크에서조차도 구호 개발을 위해 NGO와 선교단체들이 들어가서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며 “NGO나 선교단체 활동이 정부의 역할을 보완할 뿐 아니라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훈태 백석대 선교학과 교수는 “중동 국가의 한국 선교사 추방은 불법 때문이 아니라 일부 국가가 자국의 종교를 방어할 목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정책에 기인한 것”이라며 “정부가 내놓은 여권법 시행령은 자국민 보호에 대한 관심의 표명이 아니라 해당 국가들의 강압정책에 동조한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이에 외교부 관계자는 “국위손상 행위와 관련한 규제 사항을 담은 여권법 조항이 1981년부터 있었지만 실제로 선교행위로 인해 추방을 당해 여권발급이 제한된 사례는 한번도 없었다”며 “시행령이 그대로 통과돼도 현재 지침과 동일하기 때문에 특정 종교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 실제로 시행령이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입법예고를 마쳤지만 외부인사로 구성된 외교부 규제개혁심사단 심사를 거쳐야 하고, 이를 통과해도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9년 11월 외교부는 외국에서 현지법 위반으로 자진 또는 강제 출국당한 국민에게 해당국에서의 여권 사용을 선별적으로 제한하는 여권법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총리실 규제개혁위에서 특정 종교의 선교활동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통과시키지 않았다.

이성규 김성원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