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매몰지 대란] 벌써 침출수 흥건… 주민들 “역겨운 악취에 죽을 맛”

입력 2011-02-15 21:32

“오늘은 바람이 부는 데다 눈까지 내려 냄새가 덜 나지만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냄새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지난 14일 오후 4시30분 경북 안동시 일직면 국곡리 야산 중턱. 돼지 1만1414마리가 살처분돼 매몰된 현장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유해가스를 배출하기 위한 ‘n’자형 가스배출관 입구에는 죽은 돼지들이 부패하면서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흰색 물질이 흘러내렸다.

제대로 다져지지 않은 흙과 돌멩이들 사이로 신발이 푹푹 빠져들어 걸음을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 야산 중턱을 깎아 잡목을 베어낸 뒤 구덩이를 파고 돼지를 묻은 탓이다.

폭우라도 쏟아지면 빗물이 가파른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려 매몰지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조잡하게 만든 배수로는 빗물이 제대로 빠져나갈 것 같지 않았다.

방역당국은 당초 매몰지 아랫부분에 옹벽을 설치할 예정이었지만 터파기를 할 경우 매몰지 전체가 무너져 내릴 위험성 때문에 땅을 파지 않고 콘크리트 벽을 설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일단 묻고 보자’ 안이한 대응이 화 불러=매몰지 붕괴와 침출수 누출 등 구제역에 의한 2차 환경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은 방역당국과 공무원들의 안이한 대응 때문이다. 330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를 마구잡이식으로 매몰 처분하면서 매몰지에서는 핏물이 배어나와 인근 하천과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다. 구제역 매몰 매뉴얼은 있으나마나였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 10월 ‘구제역 긴급행동 지침’을 개정, 가축 매몰지 요건을 집단가옥·수원지·하천 및 도로에 인접하지 않은 곳으로 사람 또는 가축의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장소라고 엄격히 제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침은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달 21∼22일 구제역 살처분 돼지 3900여 마리를 묻은 충북 괴산군 소수면 소암리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흘러 3일 뒤 계곡으로 유입됐다. 매몰지는 하천에서 불과 5m 떨어진 곳으로, 비가 내리면 계곡과 축사에서 흘러나온 빗물이 유입되는 곳이다. 이 마을 경윤현 이장은 “주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이 막무가내로 돼지를 땅에 묻었다”며 “군에서 침출수 저류조 등을 추가로 설치했지만 앞으로 날이 풀리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이천시는 지난 10일 살처분한 돼지 270여 마리를 차량 통행이 많은 329번 지방도에서 불과 2m 떨어진 곳에 묻었다. 매몰지에는 사람 출입을 제한하는 통제선은 물론이고 안내표지판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다. 매몰지 주변에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어린아이가 뛰어다니며 노는 등 2차 감염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뒤늦게 돼지 매몰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이 집단 반발했고, 시는 4일 뒤인 지난 14일 부랴부랴 ‘구제역 접근 금지’라는 표지판을 세웠다.

◇국민 불안은 더 커져=부실하게 관리한 구제역 매몰지에 의한 2차 환경피해는 비단 지역 주민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1000만 서울시민의 식수원인 한강과 영남 지역의 젖줄인 낙동강 상류에 188곳의 매몰지가 집중돼 있다. 정부 합동조사 결과 이 중 3분의 1이 넘는 83곳의 매몰지 처리가 부실해 침출수 유출과 붕괴 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는 별도로 경기도가 매몰지 627곳을 자체 점검한 결과 56%가 지반침하와 저류조 설치 미흡 등 매몰지 상태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합동조사반은 경기도 여주 1곳과 강원도 춘천 3곳 등 매몰지 4곳이 침출수에 의한 식수원 오염 우려가 있다고 보고 매몰된 가축 사체를 파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지난 12일 전문가 전체 회의를 열고, 매몰지 변경을 불허했다.

◇주민 반발로 매몰지 조사가 중단되기도=일부 지역에서는 구제역 병균을 옮길 수 있다는 주민들의 반발에 밀려 정부 합동조사반의 매몰지 실태조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정부는 당초 경기도(77곳)와 강원도(17곳), 충북(5곳) 등 모두 99곳을 조사하기로 했으나 이 가운데 주민 반발 등의 이유로 15곳을 조사대상에서 제외했다.

경기도 구제역 상황실 관계자는 “일선 시·군의 경우 마을 주민들이 지가 하락 등 재산권 문제 등의 이유로 사유지인 매몰 장소 공개를 꺼리고 있다”며 “살처분된 마을입구에 통제선이 있지만 이곳을 통과하더라도 매몰지를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황일송 기자, 안동·괴산·이천=김재산 이종구 김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