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우리글 파수꾼

입력 2011-02-15 18:03

지난주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국민 언어 의식’의 내용이 놀랍다. ‘국어의 경어를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78%에 불과했다. 경어를 쓰기가 싫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지방 출신자가 방언을 써도 괜찮다’는 항목에 긍정한 사람은 62%로 5년 전 26.3%에 비해 배 이상 늘었다. 강호동이 예능프로를 휩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상에서 욕설 및 비속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한다는 비율은 1.2%에서 13.5%로 크게 늘었다.

말과 글의 세계가 점점 탁해지고 있다. 문법이나 수사, 은유의 기술은 찾기 힘들다. 언어가 오염되면 커뮤니케이션이 힘들어진다. 공동체에 필요한 유대와 결속을 해친다. 사람들의 성정도 사나워진다. 부적절하고 불편한 언어생활은 다문화가정이 확산될수록 심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주말 창립식을 가진 ‘우리글 진흥원’이 눈길을 끈다. 발기문에 이런 사례를 적었다. “믿을 수 있는 야생 산삼만을 직접 케서 판매합니다.”(서울 한 미장원에 붙은 광고) “항공기 탈출 직전에 구명복을 팽창하시오.”(제주항공 구명복 착용법 안내문) “주정차 단속이 당초 목적과는 달리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고.”(서대문구청 소식지)

사례는 이어진다. 최근 구제역으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내건 문구는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 등교중지를 실시함”이었다. 서울시 청사 공사안내문은 이렇다. “공사를 시행함에 최대한 시민의 피해가 없도록 안전과 환경을 최우선으로 공사를 시행하겠습니다-현장소장 백.” 유력 신문에도 “마지막 5년간 비서 수녀로 일하며 끝까지 병상(病狀)을 지켰던…”이라는 문장이 실렸다.

글이 문해(文解) 기능을 못하면 더이상 글이 아니다. 전자제품 안내서 같은 데서 알아들을 수 없는 글을 자주 만난다. TV화면에는 국적불명의 자막이 날아다닌다. 문화재 안내표지판의 설명은 도무지 관람객의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이 뜻을 실어 나르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우리글 진흥원’은 전직 기자를 비롯해 소설가, 작사가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 우리글 파괴의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펴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고 한다. 개인에서 공공기관까지, 전단지에서 자치단체 소식지까지 우리글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살피겠다는 취지다. 영세상인이나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우리글을 직접 가르치겠다고 한다. 우리글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이 단체의 활동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