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 9주기 운산 김관석 목사를 말한다

입력 2011-02-15 18:02


박형규 목사 “그는 민주화 핵심… 난 심부름꾼”

오재식 목사 “독재 실상 언론 통해 해외에 알려”


“말수가 적었지만 굉장한 파워가 있었다.” “역사적인 사건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다.” “나는 그분의 심부름꾼일 뿐이었다.”

별세 9주기를 맞은 운산 김관석(1922∼2002) 목사의 삶과 사상, 성품을 증언하기 위해 15일 오후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의 한 세미나실에 가득 모인 인사들의 기억은 대체로 이 세 가지로 요약됐다. 한국 교회 에큐메니컬 원로들이 대부분인 참석자들은 기억 속의 김 목사를 되살려내 전하면서 웃고 흐뭇해하고 공감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개최한 ‘제8회 운산 에큐메니컬 강연’ 현장이다. 증언들은 내년 10주기에 맞춰 출간될 평전의 자료로 활용된다.

김 목사가 1955∼67년 기독교서회에서, 68∼80년 NCCK의 전신인 한국기독교연합회 총무로, 80∼89년 기독교방송(CBS) 사장 및 명예사장으로 재직하며 한국의 민주화, 인권, 언론자유 등을 위해 헌신한 점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날 다수의 비화들이 공개됐다.

73년 남산야외음악당 사건으로 구속되고, 75년 수도권 빈민선교 사건 때는 김 목사와 함께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박형규(88) 목사는 “이제 와서 밝히지만 남산야외음악당 사건의 진짜 주동자(?)는 내가 아니라 김관석 목사”라고 말했다. 남산 부활절 예배가 보수 교회들로만 진행된다는 정보를 주면서 어떤 행동을 취해 볼 것을 은근히 권한 사람이 김 목사라는 뜻으로 “그분은 늘 시대의 핵심을 파악하고 계셨고 나를 비롯한 일꾼들은 그 뜻을 따라 심부름을 한 셈이었다”고 치켜세웠다.

박경서(72)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크리스천아카데미사건(1979) 당시 우리 사이에도 사건의 진짜 성격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는데 김 목사는 독일교회 대표들이 방한한 자리에 나가 ‘이 사건은 100% 조작’이라고 강변하셨다”고 전하면서 “그때 그분의 단호한 신념을 읽었다”고 전했다.

표용은(79) 전 CBS 이사장은 “12년간 NCC 총무를 했으니 좀 쉬시라고 CBS 사장에 추천했는데 더 고생만 시켜 드렸다”고 말했다.

오충일(71)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는 김 목사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활동을 지원했던 일을 전하며 “독일교회의 지원을 받아 ‘진짜 신문’으로 일간지를 하나 만들자는 계획을 세우고 실제 모금까지 했었다”며 일화를 전했다. 오 전 대표는 또 “목사님이 가장 고통스러워하신 것은 ‘인혁당 사건’(1975)으로 당시 한국 교회가 그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역량을 갖지 못했던 것을 슬퍼하셨다”고 회고했다.

오재식(78) 전 월드비전 회장은 “김 목사님의 영향력으로 한국 교회가 해외 교회와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었으며 해외 언론을 통해 한국 독재정권의 실태를 알릴 수 있었다”고 전했으며 성유보(68)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은 김 목사가 75년 동아투위 활동과 85년 ‘말’지 창간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고 증언했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