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벽안의 선교사 격동기 구한말의 삶 소설의 무대 위에 그리다… ‘이화’

입력 2011-02-15 17:52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했던 윌리엄 아서 노블(William Arthur Noble·1866∼1945) 선교사가 조선인의 시각으로 쓴 소설이 출간됐다. 소설 ‘이화’는 국내 최초의 신소설 이인직의 ‘혈의 누’가 발표된 1906년 ‘Ewha(이화)’란 제목으로 미국 뉴욕 이튼출판사에서 출간됐고, 이후 2001년 윤홍로 단국대 교수에 의해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포도원)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영작문을 강의하고 있는 이현주 교수가 번역했다. 책은 19세기 말, 격변하는 조선의 모습을 외국인 선교사가 조선인의 시각으로 썼다는 점이 특별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조선인의 시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썼다고 밝혔다.

이화/윌리엄 아서 노블/ 넥서스CROSS

“나는 조선인의 눈으로 그들의 행동을 보려고 노력했을 뿐 아니라 조선인의 관점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관습과 사상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서구인이 행하듯 사랑하고 증오하며 두려워하고 희망하며 이상을 위해 희생하는 동양인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이루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선의 큰 갈등을 나타내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개혁으로 이끌고 가는 남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예증함으로써 외세의 힘에 의해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희생자가 되어버린 조선인에 대한 연민을 일깨우고자 했다.”

전체 27장으로 구성된 책은 청일전쟁과 명성황후 시해, 독립협회 활동 등 19세기 말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김성요와 김동식 그리고 이화라는 세 인물의 삶을 통해 당시 한국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가운데 새로운 시대의 기운에 눈뜨게 되는 인물 성요와 시대의 기운을 이끌어가는 인물 동식 그리고 폭력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힘으로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화라는 세 인물은 당시 이 땅에서 살아가던 진보적 한국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화는 양반의 딸이었지만 양반의 재산을 노린 중인 계급의 모함으로 노비로 전락한 여성이다. 이화는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적인 조선에서 신음하는 여성과 달리 자주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지혜로운 여성이다. 노비의 신분으로 이화는 양반의 아들 성요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당시 사회적 관습을 뿌리치고 자유롭게 교회에서 결혼한다. 그러나 이화는 종이라는 자신의 신분이 성요의 앞길을 막을 것이라 생각하고 갈등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이화는 결국 주인에게 돌아가 매를 맞다 죽고, 성요는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조선을 이끌어갈 지도자로 다시 태어난다.

또 책은 재한 선교사의 소설이란 교회사적 의의 외에 역사적인 면에서도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조선의 격동기에 평양에 들어와 갑신정변, 을미사변, 갑오개혁, 아관파천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몸소 겪은 선교사의 시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인의 모습이 소설에 녹아 있으며 혼란기에 변화하는 조선 사회가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한편 노블 선교사는 1892년, 부인 매티 윌콕스 노블과 함께 한국 땅을 처음 밟은 후 1934년 은퇴할 때까지 42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노블이 배재학당과 연희전문학교에서 소설 작법을 강의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 신소설의 형태와 형식 구성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또 3·1운동 당시 일제 만행을 스코필드 박사와 함께 해외에 알렸던 그가 소설을 쓴 것은 조선의 독립을 위협하는 일제 만행과 고발을 담기 위해서라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는 1944년 일제의 선교사 강제추방령에 따라 귀국한 이듬해 1월, ‘한국’을 외치며 숨을 거둔 한국인 아닌 한국인이었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